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 힘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by 유지경성

회사에서 실무총괄(Project Manager) 역할을 맡은 이후로는, 정말로 쉬운 프로젝트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상대적인 난이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프로젝트에는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고객의 기대치를 관리하는 일은 항상 까다로웠다. 고객의 요구사항이 복잡한 프로젝트일수록 실무진들도 지쳐가기 때문에, 나는 중간에서 실무자들의 눈치도 보면서 동시에 고객의 기대를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수행했던 베트남 프로젝트는 유독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한국의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는 사업이었는데, 내가 총괄 PM을 맡아 법률자문, 재무자문, 세무자문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이 사업을 실제로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주는 역할이었다.


특히, 베트남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국가라 법률 체계가 매우 모호했다. 이 사업을 하기 위해 누구에게 어떤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그 허가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유권해석이 너무 다양하게 가능했고, 결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허가 여부가 달라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더불어 베트남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의 바운더리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영역이었고, 더 넓고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예전에도 미국 시장 진출과 관련된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이번 베트남 프로젝트는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했다. 고객은 마치 백과사전처럼 나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졌고, 아주 디테일한 수준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검토를 요청했다. 하나의 세세한 질문에 대응하는 데에도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전문적인 지식 영역을 깊이 있게, 동시에 폭넓게 확장해 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이런 시기가 오면, 부모님은 종종 내 일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신다. "세상일을 너 혼자 다 해?"라며 반쯤은 농담처럼, 반쯤은 진심으로 물으신다. 집에서 일할 때는 몇 달째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방,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지내는 내 모습을 보며 걱정스레 묻는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니?”


업무를 할 때 PM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더라도, 실무의 구체적인 영역을 넘어서 전체 프로젝트의 그림과 구조가 머릿속에 있어야만 제대로 된 디렉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담당이 아닌 실무라고 해도, 그 흐름과 맥락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각 영역을 고려한 통합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나는 이런 통합적인 사고가 자문 업무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맡은 부분만 보고서를 작성해서 던져주는 건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사고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반복적 업무라면 시간이 지나면 일이 나를 피해 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는 업무는 그렇지 않다. 내가 휴가를 가든,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흘려보내든, 놀든… 결국 해야 할 일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버텨내고 뚫고 나가야만 한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베트남에서 현지 변호사와 회계사들을 팀원으로 두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들은 나에게 인격적인 존중이나 충성심을 느낄 이유가 없다. 장기적으로 나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고, 같은 회사 소속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동기부여는 더 어려워지고, 팀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눈치를 보며 일을 요청해야 할 때도 많다. 때로는 부탁을 하듯 요청해야 하고, 때로는 내가 직접 업무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역량을 끌어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히 아쉬웠던 점은, 베트남 팀원들의 실무 숙련도가 기대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었고, 경력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내 기준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자문업이라는 것은 결국 경험보다도 태도가 중요할 때가 많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경험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에게 그런 동기부여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고객기업은 그들에게는 단지 수많은 외국 기업 중 하나였고, 애정을 가질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들의 회사 입장에서는 우리가 지급하는 수수료가 적지 않은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더더욱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현지 법률 체계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회계기준 역시 한국과 많이 달랐다. 물론 회계 기준의 차이는 비교적 쉽게 조정이 가능했다. 그보다는 법률 쪽에서 우려가 컸지만, 다행히 현지 PM과의 라포가 잘 형성되었고, 현지 팀원들과의 호흡도 점차 맞아가기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약 3주쯤 지났을 때, 나는 팀원들에게 데드라인을 주고 중간 점검용 보고서를 요청했다. 마침 출장차 베트남에 와 있던 시기였고, 그들은 보고서를 새벽 1시에 보내왔다. 나를 배려해서였는지, 그들은 내가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내가 보고서를 리뷰하는 데는 최소 2~3일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데드라인을 오후 6시로 정했고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보고서는 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메일함을 주시했다. 결국 보고서가 도착한 건 새벽 1시였다. 총 200페이지 분량의 문서. 그걸 받아든 순간, 이 수준의 보고서로는 프로젝트 마지막에 큰 사고가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방향성이 모호하거나,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르게 작성된 부분들을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리뷰를 썼다. 그렇게 정리한 피드백을 아침 8시에 다시 팀에 보냈다. 리뷰를 마치고 나니 해가 뜨고 있었다.


프로젝트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현지 팀원이 조심스럽게 “To be honest…”로 말을 꺼냈다. 로컬 팀원들 사이에서는 내가 그냥 워커홀릭이거나, 한국에서 미친 사람이 하나 온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었지만, 그 말에서 지난 몇 주간의 긴장감과 오해들이 녹아 있는 듯했다.


이번 프로젝트 기간 동안, 그 외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질문에도 대응해야 했다. 처음엔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곧바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질문이 왜 나왔는지, 어떤 맥락에서 그런 궁금증이 생겼는지를 상상한다. 그러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정도 합리성이 보이면 나는 결국 스터디를 시작한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파고드는 편이다.


물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결국은, ‘지적 호기심’이다. 그게 없었다면 이 일은 도저히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시간 소모와 스트레스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젝트들을 치르며, 나는 내 20대와 30대 초반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 질문에 대해 늘 느끼던 감정이지만, 어제 한번 더 그 생각과 감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제는 베트남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고객사의 팀장님과 실무진 분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내가 곧 영국으로 떠나는 걸 알고,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며 저녁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우리는 프로젝트 내내 희로애락을 함께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나는 실무진들과 정말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팀장님이나 실무자들과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회의 시간에는 늘 웃으며 이야기했고, 상황이 어려울 땐 “오프 더 레코드로만 들어주세요”라며 서로의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다.


사실 아주 어린 1~2년 차 시절에는 고객과 다투기도 했고,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달았다. 현명한 사람은 감정을 해소하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한다. 감정적으로 부딪힌다고 해서 오히려 감정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제 저녁 자리에서는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5~6개월을 되돌아보며 웃기도 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힘들었던 부분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팀장님께서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부장님 가시면 저희는 이제 이 회사랑 일 안 해요.” “영국에도 지사 내주세요.” 그 말들 속엔 농담이지만 진심이 조금은 담겨 있었고, 나는 그 순간 ‘유종의 미’라는 말을 떠올렸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프로젝트였지만, 결국은 이렇게 따뜻하게 마무리되는구나 싶었다.


그 고마움의 표현은 단순히 회사 대 회사의 용역대금 이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이었고, 몇 달간의 고된 시간을 위로해 주는 진정한 보상이었다. 나는 사실 프로젝트를 할 때 계약서에 적힌 ‘업무 범위’를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마치 그 회사의 담당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일한다. 계약은 임원들이 고민할 문제고,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만 생각하며 움직이는 쪽이다.


저녁 식사 후, 내가 결제를 하겠다고 나섰다. 고객사는 원래 접대 예산이 거의 없는 곳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팀장님이 지갑에서 조심스레 5만원권 다발을 꺼내셨다. 와이프 몰래 모은 비상금인데, 오늘은 부장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꼭 쓰고 싶다고 하셨다. 꼬깃꼬깃한 5만원을 건네는 그 모습에, 괜히 마음이 묘해졌다. 미안함과 함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제야 다시금 떠올렸다. 결국 내가 이 일을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월급이 아니라 이런 고객들과의 관계였고, 팀원들과의 유대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초여름의 밤공기가 피부에 닿는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고단했지만, 뭔가 따뜻한 하루였다.


회사를 퇴사하면, 당분간은 이런 감정에서도 멀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내 안에 충분히 쌓였다는 걸 아니까.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일하는 방식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함께 배워온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와 비슷한 순간들을 다른 곳에서도 만나게 되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