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꺼내보는 과거 선택의 이유들
바쁜 회사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덧 여유로운 삶 2주 차에 접어든 듯하다. 첫 일주일은 해외를 오가며 지쳤던 체력을 회복하고, 한국 생활에 다시 적응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나만의 삶의 루틴을 만들어 지내보고 있는데,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도 있고, 지루한 삶의 재미도 느끼고 있다.
영국 출국 전까지 주어진 두 달의 시간은 오랜만에 찾아온 나만의 여유다. 한국을 떠나며 모든 사람들과 작별 인사(술자리 등)를 하듯 이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나는 그리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일부 가까운 사람들과만 약속을 잡고, 대부분의 시간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차분하게 보내보려 한다.
단기적으로는 8월에 있을 시험 준비에 집중할 계획이다. 업무와 관련된 시험으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 투입이 필요하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꾸준히 공부해 왔지만, 이제는 정말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예전에는 새벽에 퇴근하고도 아침에 1~3시간씩 시간을 내어 공부했었다. 바쁜 프로젝트 시기에는 피로 누적으로 인해 몰입도가 떨어지면서 시험 준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GMAT과 유학 준비를 병행하던 시기에는 이 시험마저 잠시 손에서 놓아야만 했다.
이번 주부터는 조금 색다르게, 시간관리를 본격적으로 시도해보려 한다. 예전부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내 인생의 시간을 나는 실제로 어디에 얼마나 쓰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사실 대부분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일에 쓰였기 때문에, 이런 시간 관리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궁금했다.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무엇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 지금처럼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를 맞이한 만큼, 스스로의 시간을 더 의식적으로 관리해보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조금 더 유연한 생활 패턴을 가져가게 될 테니, 이 기회에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광고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시험해 본 끝에 Toggl Track(https://toggl.co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발견했다. 사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했고, 시간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광고가 아니기에 이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중요한 건, 내가 정말로 내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를 스스로 아는 일이다. 예를 들어서, “공부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공부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그런 자기모순적인 모습은 피하고 싶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려니, 생각보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분명 나아가야 할 방향은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고, 마음도 단단히 먹었는데도, 이런 결정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이 자꾸만 나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진로와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은 때때로 나를 두렵게 만든다.
“좋은 학교에 가는 사람이 무슨 걱정이 있겠어.” 이런 말은 겉모습만 보고 내리는, 너무 단편적인 판단이다.
나는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돈으로 편안하게 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길러진 적도 없다. 밤낮없이 일했고, 스스로 공부했고, 마음 졸이며 투자했던 시간들 속에서 어렵게 만든 나만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부모님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자금의 대부분을 이번 선택에 쓰기로 했다. 이 결정은 단순히 ‘갈 수 있어서 가는 유학’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결과물 대부분을 내려놓는 선택이다. 그래서 내게 이 결정은 무겁고, 자연스레 책임감도 따른다.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도, 퇴사를 결심하고 발표하던 순간도, 그리고 실제로 회사를 떠나 영국으로 떠나는 그날까지.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이 과정 속에서 잃은 것도 많다. 물론 얻은 것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그냥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가곤 한다. 그렇지만 이번 결정은 ‘잘 되기 위해’ 내린 선택이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공간과 시간을 주고, 나에게 더 맞는 미래를 조용히 고민해 보기 위한 여백일 뿐이다. 설령 그 고민의 끝에서 다소 엇나간 답을 내리게 되더라도, 그것 또한 내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려 한다. 그래서 그렇게 두렵지는 않다고 다시 마음을 잡으며 지내려고 한다.
얼마 전엔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내가 이번 결정과 같이 무언가 초기화하고 떠나는 결정을 쉽게 쉽게하는 것이 멋지면서도 조금은 특이하다고 했다. 금액을 떠나, 자신이 가진 100 중에 100을 내려놓는 결정을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리는 아들의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번뿐 아니라 늘 그래왔다.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보다, 놓는 게 더 익숙했던 것 같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 나는 '소유한다'는 감각 자체가 약한 사람인 듯하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 적이 별로 없고, 삶에 대해 애초에 높은 기대치도 없다. 그래서 뭔가 없어도 그저 지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지금의 결정 역시 ‘있는 자원을 어떻게 지키느냐’보다,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대단한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큰 부자가 되고 싶어서 내린 결정도 아니다. 다만, 지금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가 보려는 것뿐이다.
이런 시기가 처음은 아니다. 아마도, 대학원 졸업하던 시점이 가장 최근인 듯하다. 대학원 졸업 이후 지금의 바쁜 직장을 선택하게 됐을 때, 나에겐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기업군, 다른 회계법인, 그리고 박사과정. 대기업은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터라 굳이 또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결국 두 가지 방향이 남았다.
회계법인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히 바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런 바쁜 삶은 박사과정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즐길 수 있는가’였다. 박사과정의 핵심은 학문과 연구 그 자체를 좋아하느냐는 문제였다.
내 주변엔 다행히도 친구이자 젊은 교수들이 있었다. 두 명의 친구이자 형.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며 나는 내가 박사과정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들은 크지 않은 연봉,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에서도 늘 새벽까지 공부하고,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연구에 몰입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연구 그 자체가 좋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느꼈다. 박사라는 타이틀이나 교수라는 직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였다.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세상에는 타인의 시선이나, 명예/권위(사회적 지위), 졸업 이후에 편안한 워라밸 등 부차적인 이유 때문에 박사과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선택하는 삶이 결국 ‘보여주기 위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살면서 내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즐기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잘할 수도 없다는 결론의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회계법인을 선택했고, 사실상 유일한 다른 길을 택했다.
그때 다짐했던 게 있다. 친구가 박사과정 6년을 버텼다면, 나도 그보다는 열심히 살아보자. 적어도 그 정도는 해보자. 내가 과거 런던에서 밤새워 일할 때조차도 즐거웠던 것처럼, 돈을 얼마나 주는지, 승진이 빠른지 보다는 내가 내 일을 즐기고, 그 안에서 성장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입사 이후 모든 시간이 그런 이상적인 마음으로 채워지진 않았다. 일이 안 풀릴 땐 답답하고, 마음에 안 드는 프로젝트를 할 때면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다른 기회들을 바라보며 이직 생각을 한 적도 많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그래도 한번 더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7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박사과정을 포기하며 했던, 나와의 작은 약속은 나름대로 지켜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다행히 그 비교 대상이 각박한 "박사과정"이었기에, 스스로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나도 배운 게 많았다. 내가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도, 즐기지 않으면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그 분야가 나에게 정말 유익한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기준은, 내가 그 일을 즐기며 오래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모님 커리어에 대해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다. 부모님은 금융회사에 다니셨고, 영업본부에서 일하고 계셨다. 어느 시점에 회사 내부 사정으로 채권 쪽으로 부서를 옮길 기회가 생겼다. 외부에서 보기엔 영업은 '을', 채권은 '갑'이니 당연히 채권 쪽이 더 편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나도 그게 낫지 않겠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런데 부모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영업본부에 남겠다고 하셨다. 그 이유가 나에게는 인상 깊었다. “누군가에게 압박을 주고, 쥐어짜는 일에 엮이다 보면 결국 나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라고 하셨다. 영업은 자신에게는 힘들지만, 잘되면 고객도 좋고, 회사도 좋고, 모두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이라고. 결국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때 나도 알게 된 것 같다. 좋지 않은 상황, 갈등 속에서 생기는 비즈니스는 가능하면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M&A 업무가 좋다. 물론 성사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잘 되면 사는 쪽도, 파는 쪽도 웃을 수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게 좋다. 그리고 이 가치관 덕분에 사모펀드 쪽은 애초에 관심이 없다. 무언가를 팔기 위해서 사야 하는 행위, 자본주의의 본질일 순 있지만 내가 굳이 나서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의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 나한테는 조금 더 중요하다.
일요일 밤 조금의 여유로운 순간의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