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리스크
최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는 조직문화에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바로 '수직적인 문화가 굳어졌을 때 발생하는 침묵의 리스크'다.
기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한 조직에서 구성원 간의 원활한 소통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조직에서 상사가 A라는 방향을 제시했을 때, 팀원 모두가 A가 실질적으로 잘못된 방향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피드백이 단절된 구조는 결국 잘못된 결정이 실행되고, 그 결과는 고객의 신뢰 상실로 이어지며 회사 전체의 경쟁력을 훼손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위계 문제가 아니라, 기업 차원의 리스크다.
내가 이번 출장에서 실제로 마주한 사례도 이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젝트의 실무진은 약 3개월간 현행 법을 분석하고 관련 판례 및 과거 사례들을 폭넓게 검토하며 법률적인 방향성을 어느 정도 정리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임원은 약 10년 전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갑작스럽게 실무진과 논의 없이 자문 방향을 임의로 바꾸었고, 그 결과는 최종 보고 자리에서 의견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사례에서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실무팀과 임원 간의 소통 부재다. 중요한 보고 자리에서 메시지가 흔들리는 모습은 단순한 의견 차이로 보이지 않으며, 외부에는 전문성과 신뢰 모두에 의문을 주게 된다. 나는 보고 직후, 개인적으로 큰 실망을 느꼈다고 담당임원에게 전했고, 고객과의 빠른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명확히 전달했다. 둘째는 수직적인 구조의 병폐다. 몇 개월간 실무를 주도하며 쌓아온 정보와 판단을, 어떤 설득이나 설명 없이 덮는 결정은 조직 내부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임원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있지만, 그 시점에서의 실무적 깊이는 실무진이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못한 채 결정을 수용하는 모습은, 평소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얼마나 일방향적이었는지를 드러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문제가 베트남이라는 국가가 가진 문화적 수직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심지어 서구의 많은 조직에서도 여전히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이는 특정 국가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모든 조직이 일정 수준의 위계를 기반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문제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사례가 있다. 1997년 괌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다. 착륙을 시도하던 기장은 기상 상황과 항로 정보에 대해 잘못 판단했고, 이를 인지한 부기장은 수차례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시도했지만, 끝내 기장의 판단을 바로잡지 못했다. 사고 후 분석된 조종실 녹음 기록에서는 부기장의 망설임과 침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명백히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직적인 문화 속에서 부기장은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했고, 결국 이 사고로 200명이 넘는 목숨이 희생되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위계에 눌린 침묵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방향성 문제에 대해서는 상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직급의 무게이고, 권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배들이 자신의 제안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좌절하는 것을 보면, 그 감정은 이해하지만 반드시 합리적이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조직에는 각자의 역할과 레벨이 있고, 실무에 강해야 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전체적 판단과 책임이 요구되는 임원 레벨의 판단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답이 없고 방향성만을 결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해석과 선택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는 상사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만약 상사의 판단이 명백히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럴 때야말로 실무진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상사가 상황을 다시 보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정보와 맥락을 충분히 공유하고, 판단의 배경을 하나씩 교정해 가며 상사가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정이 누구의 것이냐가 아니라 그 결정이 최선인가에 있다. 실무진이 해야 할 일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사가 올바른 방향을 직접 다시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중간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원하는 방향과 상사의 방향이 다를 경우 두 가지 정도를 실행해 본다. 첫 번째는,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공유하며 상사가 현재 프로젝트의 배경과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실무에서 내가 더 많이 접한 정보가 있다면 그것부터 먼저 설명하고, 상사의 시야를 넓히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상사가 그 모든 정보를 충분히 이해한 후에도 여전히 다른 결정을 내린다면, 나는 그 결정을 따른다.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는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소통과 실력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소통만 잘해서는 안 되고, 실력만 뛰어나서도 안 된다. 특히 복잡한 프로젝트일수록 진짜 실력은 ‘완성도 80% 수준의 산출물을 빠르게 만들어내고, 그걸 바탕으로 내부와 외부 고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80%를 만드는데 10의 시간이 걸렸다면, 나머지 20%를 채우는 데는 그 두세 배의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큰 틀을 빠르게 만들고, 이를 가지고 방향성을 조율하며 컨센서스를 형성한 다음, 세부 사항을 정리해 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접근법은 초기의 방향성과 전체 구조를 유지한 채 업무를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게 해 준다.
누군가는 100%를 만든 후에 ‘짜잔’ 하고 놀라게 하는 방식이 더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대개 영화나 소설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실제 업무에서는 이런 소통의 결핍이 오히려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일은 혼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편한 것은 아니다. 소통은 대게 불편하고, 부족한 상태의 결과물로 내부나 외부의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으면 수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불편함이 반복적으로 괴롭고 회피하고 싶어 진다면, 그것은 환경의 문제이거나, 그 일이 가진 본질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업무를 찾고, 또 그 업무가 가능한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직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그런 환경에 속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