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그랬어.

엄마와 함께했던 유럽여행

by 유지경성

엄마는 가끔 “엄마도 그랬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힘들다거나 불만을 털어놓을 때, 엄마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하곤 한다. 할아버지께 진로나 결혼 문제로 반대가 있을 때, 엄마는 자신의 생각을 할아버지에게 조목조목 따지며 설명하곤 했다고 한다. 형제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려 했던 엄마와는 다르게, 결혼을 서두르길 원하셨던 할아버지와 여러 차례 충돌을 겪었다고 한다. 심지어 재테크에 관해서도 의견이 엇갈려 논쟁이 잦았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본인의 길을 고집하며 할아버지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자신의 길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닮았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엄마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돈을 모아 할머니를 중국으로 모시고 갔던 기억을 이번 유럽여행에서 나에게 말했다. 해외에서 우왕좌왕하는 할머니를 보며, 왜 이렇게 느리고 말도 안 듣고 불만도 많냐고 자주 다퉜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그때의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엄마도 그때는 그랬어,“라며, 자식인 나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시절 할머니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고 다그쳤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제 와서 아픈 할머니와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지금, 엄마는 당시를 떠올리며 더 깊은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다.


유럽 여행을 다니며 엄마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유복한 가정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았고, 그 때문에 가족 단위로 해외여행을 길게 떠난 적은 없었다. 엄마는 “너희들이 지금도 훌륭하지만, 만약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면 시야도 넓어지고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 거야”라는 말씀을 자주 한다. 부모로서 부족함 없이 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담긴 말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 돌아보면, 물론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며 풍부한 지원을 받은 친구들의 환경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그 어려웠던 환경 덕분에 삶에 대한 만족과 인내를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부족함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풍요로움을 더욱 감사하게 여길 수 있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근성도 갖게 되었다. 작은 것에도 쉽게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런 태도 덕분에 나는 꾸준함을 유지하면서도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엄마는 유럽의 관광지를 감명 깊게 바라보고 여행지를 즐겼지만, 그 속에서 나와 함께하는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세느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면 파리의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나는 혼자서 유람선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파리의 풍경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문득 엄마를 바라보니 그런 내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엄마에게 파리의 풍경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곳에서 아들과 함께 보내는 순간과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인 듯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에 나는 순간 머쓱해졌다.


엄마와 함께한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나에게 새로운 배움을 주었다. 이제 엄마도 60이 넘었다. 초등학교 시절, 30대 중반이던 엄마와 찍은 사진을 보면, 어느새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나를 어린 시절 키워주셨던 할머니는 오래전에 치매를 앓기 시작하셔서 요양병원에 계신다. 아직도 나를 어린 시절 그대로 기억하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엄마는 “엄마도 그랬어”라고 한다. 어릴 적 나를 키우며 느꼈던 시간과 추억들을, 할머니와의 기억 속에서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나도 언젠가 이 순간을 떠올리며 엄마와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될 날이 올 거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여행을 하며 순간순간 느끼는 기쁨과 아쉬움, 그리고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많다. “엄마도 그랬어”라는 그 말을 기억하며, 나도 언젠가 이 소중한 순간과 아쉬움을 되새길 것만 같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을 조금은 줄여보고자 오늘도 노력해 본다. 이 순간에 감사하고, 지금 곁에 있는 이 소중한 사람에게 조금 더 진심을 전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