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으로 두바이를 방문하다.
생각보다 첫 학기는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 한 달마다 이어지는 시험, 엄마의 방문까지 겹치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내가 붙잡고 살아낸 것이라기보다는, 시간이 나를 스쳐 지나간 느낌에 더 가깝다. 그 시간들을 충분히 곱씹고 내 안에 쌓아두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제부터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이 남아 있다.
두바이는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중동이라고 하면 막연히 석유가 많은 나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두바이를 ‘기회의 땅’이라고 부르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실제로 두바이에서 취업했다는 사람도 보이고, 투자를 두바이에서 받았다는 이야기들도 들린다.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두바이는 어떤 나라인지, 어떤 풍경을 가진 곳인지. 그렇게 두바이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12월 14일부터 21일까지 두바이에 머물렀다. 우리 학교는 두바이에 작은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현지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임원 MBA 과정이지만, 그중 일부 수업은 런던 캠퍼스의 전일제 학생들에게도 열려 있다. 일정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1주일 동안 하루 3시간짜리 수업을 10번 그대로 소화해야 했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수업에 묶여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그룹 과제나 개인 과제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게다가 항공권, 숙박, 식비 등 두바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개인 부담이라, 꽤 큰 투자가 필요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바이에서 짧지만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며, 내가 느낀 몇 가지 감정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두바이를 방문하며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두바이에 도착해 가장 먼저 느낀 인상은, 이 도시가 호치민과 싱가포르의 분위기를 군데군데 닮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두바이는 ‘성장하고 있는 도시’라는 감각이 매우 분명했다. 이미 웅장한 건물들이 도시를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여전히 건설 현장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규모와 과감한 투자에는 단번에 압도된다.
도시는 전반적으로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구획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고, 도로망 역시 잘 연결되어 있다. 뉴욕, 서울, 도쿄, 런던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건물들이 많으며, 특히 부르즈 칼리파가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은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두바이를 좋아하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기간 살아가기에는 나에게 꼭 맞는 도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의 땅’이라는 표현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싱가포르를 경험했을 때도 느꼈지만, 이런 도시들에는 사회의 단면이 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두바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바이에는 노동을 하지 않는 자본가 계층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아래에 노동자 계층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빈곤한 환경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각자의 기회를 찾고 있다. 사회가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성장과 부의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은 분명 바람직하다. 다만 두바이나 호치민 같은 도시를 방문하다 보면, 그 격차와 괴리감이 지나치게 분리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나는 그 지점이 꽤 불편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상적으로 모든 계층이 완전히 섞여 있는 사회가 항상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과도한 소셜 믹스는 또 다른 혼란과 불편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어느 정도는 중간 지점에서 완충되고 화합된 사회가 내가 느끼기에 더 편안한 사회에 가깝다.
부르즈 칼리파를 방문했을 때나, 고급스러운 공간에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택시기사를 대하는 태도부터 미묘하게 달라지고, 전반적으로 고압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것 역시 효율의 한 형태일 수는 있겠지만, 계층과 역할이 너무 노골적으로 표면화된 사회는 나에게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을 준다.
효율을 극대화하는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불가피하게 따라온다는 점은 이해한다. 특히 베트남이나 두바이처럼 급성장하는 도시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공기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가까이에서 오래 마주하고 싶지는 않은 사회의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낭만이라는 비효율
두바이는 사막 위에 새롭게 만들어진, 말 그대로 무에서 창출된 도시다. 도시의 규모는 굉장히 크고 웅장하다. 다만 두바이에서는 걸어서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로 자체가 매우 넓게 설계되어 있어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하기 어렵고, 일상적인 도보 이동을 전제로 한 도시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구조 덕분에 도시는 효율적으로 확장될 수 있고, 경제적인 성장 역시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걸으며 작은 풍경을 마주하거나, 도시의 결을 천천히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걸어서 이동하려고 하면, 신호조차 없는 6~8차선 도로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차가 없는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분명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반면 택시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운행되는 차량들 역시 고급 차종이 많아 이동 자체는 편리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가끔은 목적 없이 공원을 걷거나, 강변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좋아한다. 이런 순간들이 항상 필요하지는 않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한 번씩은 꼭 필요한 장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두바이는 비즈니스에는 매우 효율적인 도시이지만, 인생의 비효율 속에서 느끼는 낭만을 담아내기에는 다소 어려운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바이에서의 커피챗
두바이를 방문하며 수업 외에 또 하나의 목표는 내 미래의 직업에 대해 고민해 보는 일이었다. 두바이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근무 중인 친구와 미리 약속을 잡아 수업을 마친 뒤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만남들이었다.
다만 이번 두바이에서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분명히 느낀 점이 있다. 직업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대화의 중심이 돈이나 얼마나 바쁜지에 놓이기 시작하면,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흥미를 잃는다는 사실이다.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세금은 얼마나 되는지 같은 이야기보다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목적에서 그 일을 선택했는지, 그 일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는지, 그리고 그 일이 개인에게 무엇을 남기는지가 더 궁금하다. 그런데 대화가 수치와 조건 위주로 흘러가면, 그것은 내가 알고 싶었던 이야기의 영역과는 조금 멀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느낌을 몇 번의 대화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고, 전적으로 내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한두 번의 만남조차도 나에게 주어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나 거리감 역시,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두바이에서 나눈 대화들을 돌아보면, 아주 명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일의 본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느냐, 그리고 그 목적에 얼마나 잘 맞는 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아주 작은 차이가 결국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그 방향을 조금씩 가늠해 보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생에서는 적절한 실력과 운, 그리고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내년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아직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다양한 인연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며, 그 과정 속에서 나에게 조금 더 맞는 선택을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두바이를 마치고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 왔다. 런던의 복잡함 대신, 단조로운 일상을 선택했다. 테니스 아카데미를 등록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조용히 보내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며 한 해를 정리하고, 연말이라는 시간을 통해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고자 한다. 연말에는 조금은 복잡함과 거리를 두고 한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