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時間)

봄이 일깨우는 시간의 감각

by 유지경성

2026년 2월 25일 오후 1시 55분.


학교에서 만난 동갑 친구와 한국에 가기 전 점심을 먹었다. 친구는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학교를 다니고 있다. 같은 나이지만 삶의 형태는 조금 다르다.


점심을 먹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건, 삶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대에도 했던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다만 그때는 막연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익숙해졌을 뿐이다.


이제 막 30대 중반에 들어섰지만, 중반과 후반을 지나도 이런 고민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커리어 고민이든, 인생의 고민이든 이번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면 모든 게 정리될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덜 하게 된 것이다. 그저 지금 내 앞에 놓인 선택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미루지 않고 해보는 것. 그리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결과나 또 다른 갈림길에서는, 그때의 조건과 마음으로 다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조적으로 실패가 예견되는 선택은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생존과 관련된 판단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접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일들도 있다.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도전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결국 그 구분 또한 내 몫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은 빨라진다. 경험이 쌓이면서 위험을 미리 감지하기도 하고, 동시에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모함을 반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실패를 계속 감당하는 일 역시 체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의 고민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 감수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가깝다.


오늘 런던은 2026년의 첫 봄을 알리는 듯한 날씨다. 기숙사 앞에서는 벌써 꽃이 피고 있다.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날에는 묘한 감정이 따라온다. 삶이 갑자기 다른 단계로 이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사실 어제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은 없는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봄이 온다는 사실 자체는 기분을 조금 가볍게 만든다. 더 움직여도 될 것 같고, 지난 실패나 우울을 정리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스친다.


Bloomsbury, London


시간은 계절의 변화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재무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도 시간이고, 공학에서도 시간은 핵심 제약조건이다.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시간은 거의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다. 하루 24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각자는 자신의 삶을 배분한다.


어떤 날에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이 두렵고, 어떤 날에는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시간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감정을 느낀다. 멈춰 있었으면 하는 순간도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시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의 내 태도가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봄이 만연한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결국 시간의 흐름이다. 계절이 바뀌는 장면을 눈으로 확인하면, 추상적이던 시간이 갑자기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아쉬운 시간은 꼭 슬펐던 순간이나 힘들었던 시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즐거웠던 시간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아쉬운 건, 두려움이나 귀찮음, 혹은 스스로 만든 생각의 틀 안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들이다. 특별히 실패한 것도, 도전한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린 날들.


그 시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했을지 몰라도, 돌아보면 가장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을 잃었다기보다,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는다. 결국 후회는 결과에서 오기보다, 움직이지 않았던 순간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인생에서 의미 있어 보이든 그렇지 않든 지금 주어진 환경과 기회, 그리고 인연에 대해 최선을 다해보는 일은 분명한 가치를 가진다. 결과가 실패라면 그것은 이후의 선택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가 될 것이고, 그 과정이 즐거웠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인생의 그래프에는 분명히 하락 구간도 있고 상승 구간도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기대보다 낮게 위치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예상보다 높이 올라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완전히 무질서하게 흩어지기보다는,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는 것 같다. 단기적인 등락이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정체다. 아무 시도도, 아무 변화도 없이 이어지는 무의 직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그저 반복되는 상태. 적어도 움직였다는 흔적은 남겨두고 싶다. 그 방향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내 인생의 시계(視界)는 매우 짧다. 한 달 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변화의 시기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은 곧바로 스트레스로 이어졌을 텐데, 요즘은 의외로 마음이 고요하다. 물론 불확실성에서 오는 긴장감은 있다. 계획이 명확하지 않을 때 생기는 부담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이 예전처럼 나를 잠식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큰 틀에서 보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나는 선택의 결과보다, 그 안에서 중심을 유지하는 쪽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것 같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중요한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최소한 스스로를 지탱할 기초 정도는 쌓였다는 감각이 있고, 그 감각이 지금의 고요함을 만든다.


여러 선택지와 환경이 동시에 놓여 있는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몇 가지 가치는 분명히 붙들고 가려고 한다. 당장 1~2개월 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모험 앞에서 조금은 이 불확실함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으면 피하고 싶었을 상황이지만, 지금은 스릴에 가깝다.


백수가 되든, 다시 직장인이 되든 내 인생의 본질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직업은 환경일 뿐이고, 나는 그 환경 위에 놓이는 사람이다. 어떤 조직에 있든, 어떤 명함을 갖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태도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조건이지, 사람 자체는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결과보다도, 그 과정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더 집중해보려 한다. 지금 내가 믿고 선택하는 가치들이 나를 늘 행복하게만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선택들이 시간이 지난 뒤 돌아봤을 때, 나를 조금이라도 단단하거나, 성장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기를 바란다.


그 결과를 단지 운에 따라 흘러오는 우연이나 기우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선택이 옳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내가 얼마나 꾸준히 밀고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의 결과는 선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지탱하는 태도와 반복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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