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이모저모

나의 일상 이야기

by 유지경성

오늘은 설날이다. 설날을 기념해서인지 오랜만에 런던의 하늘이 무척이나 맑다. 한국에 있었으면 가족과 함께 보냈을 날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보내는 설날은 다소 고요하기만 하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퇴사한지 25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오랜시간이 지난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사실 회사를 다니던 정서적 긴장감을 내려두진 않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변했는지를 돌아보면서도,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가일지도 모른다. 환경은 계속 바뀌고, 관계도 역할도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는 어떤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그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렇게 일부러 환경을 극단적으로 바꿔보면 오히려 내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 더 선명해진다. 회계에서도 작은 숫자 1이나 2를 넣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구조가 999나 0 같은 극단값을 대입하면 문제의 형태가 또렷해지듯이, 삶도 마찬가지다. 나는 MBTI 중에서 N, 사고와 직관이 강한 사람이라 어떤 선택 앞에서 마음이 흐릿할 때 일부러 극단적인 가정을 세워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살핀 뒤, 그 방향을 하나의 힌트로 삼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보는 항상 같은 뷰



생각과 실행


12월부터는 의도적으로 수업과 과제에 쓰는 시간을 많이 줄였다.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여지도 많아졌다. 마요르카 이후의 일상은 겉으로 보면 꽤 조용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익숙하게 반복해오던 패턴과는 다른 방식으로 또 바쁘게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생각을 적당히 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점은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무엇에 끌리는지, 어떤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지가 보인다. 반면에 좋지 않은 점은 생각이 스스로를 증폭시키며 끝없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균형을 잡지 않으면, 이해는 깊어지지만 동시에 복잡함도 함께 커진다.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천재적인 연주자나 세계적인 운동선수들이 “생각 없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상태는 뇌과학적으로 몰입 상태(Flow state)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때는 분석과 자기검열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전전두엽 일시적 저활성(transient hypofrontality)이 나타나고, 대신 오랜 훈련으로 자동화된 신경회로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즉, 의식적으로 계산하는 뇌가 아니라, 이미 몸에 각인된 패턴과 감각을 담당하는 네트워크가 전면에 나서면서 수행이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팔레토 법칙(80/20 rule)을 삶의 사고와 실행에 적용하면, 우리의 성과 대부분은 길게 고민하는 시간에서가 아니라 방향을 정확히 잡는 소수의 결정적 사고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즉, 깊고 구조화된 생각은 전체의 20%면 충분하고, 나머지 80%는 실행과 반복, 그리고 몰입(Flow state)에 쓰여야 한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전략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기 위해 의식적 사고(System 2)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되,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과도한 분석을 멈추고 자동화된 수행(System 1)에 몸을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오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생각한 뒤 충분히 행동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인생의 대부분을 생각하는 데 쓰고 실행은 극히 일부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와 행복의 측면에서 돌아보면, 지나친 사고는 오히려 망설임과 자기검열을 키우고 삶을 복잡하게 만들기 쉽다. 방향을 잡기 위한 깊은 고민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삶의 대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은 짧고 선명하게, 실행은 길고 꾸준하게 가져갈 때 삶은 더 단순해지고 확실해진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움직이는 것은 완벽한 사고가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과 경험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생각을 줄이고 있다. 사랑을 분석할 시간에 더 자주 표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하고, 인생의 방향을 끝없이 고민하기보다 해보고 싶은 일이나 필요한 준비를 하나라도 먼저 실행한다. 완벽한 확신을 기다리기보다 작은 행동을 반복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만약 인생에도 현재 나의 가치를 보여주는 주식 차트 같은 그래프가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하고 쌓아가는 한 그 곡선은 결국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 그래프의 Y축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기 때문이다.


거실 침대를 지키는 IKEA 출신 강아지



Stock Pitch Competition


나는 원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많지 않다. 그래서 LBS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유의미하게 관계가 깊어진 친구는 몇 되지 않는다. 그중 Jason은 가장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는 나와 같은 Berkshire Hathaway의 주주이면서 Value Investing을 좋아하는, 다소 철학적인 성향의 친구다. 배경도 꽤 인상적이다. University of Oxford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이후 Yale Law School을 졸업해 미국 변호사 자격도 갖췄다. 고향인 홍콩에서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겸임교수로 강단에도 섰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나와 동갑이다.


그는 변호사라는 탄탄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주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아마도 패밀리 자금과 관련해 나보다 더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라온 듯 보이지만, 적어도 Value Investing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기업을 대하는 태도, 내재가치에 대한 집요함,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내 같은 부분에서 우리는 자주 공감대를 형성한다. 2월에는 그가 먼저 Stock Pitch 대회에 함께 나가고 싶다고 제안했고, 최대 4명까지 팀을 꾸릴 수 있었지만 우리는 굳이 인원을 늘리지 않고 2인 팀으로 등록해 Proposal을 작성했다. 숫자보다 밀도 있는 논의를 택한 선택이었다.


Stock에 대한 논의 자체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오히려 Jason이라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준비 과정에서 그는 변호사로서의 논리적 사고와 구조화 능력은 탁월했지만, 시장을 해석하고 재무제표를 읽으며 모델링을 통해 기업 가치를 추정하는 영역에서는 나에게 상당 부분 의존했다. 법적 사고는 명확성과 일관성을 추구하지만, 시장은 감정과 기대, 불완전한 정보가 뒤섞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숫자와 기업을 다루며 쌓아온 직관과 프레임은 그에게는 아직 낯선 언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질문하며 끝까지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주식시장에는 절대적인 single calculator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 속에서 각자의 배경이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관계를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Jason은 변호사에서 상장주식 투자자로 커리어를 전환하길 원한다. 그러나 투자 업계의 문법 안에서는 그의 화려한 이력이 곧바로 경쟁력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종종 불안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더 ‘투자자처럼’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내 눈에는 이미 충분한 지적 기반과 사고의 깊이를 갖춘 사람이다. 사람은 대개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이미 자신이 가진 것의 무게를 잊어버린다. 아무리 좋은 배경을 가져도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고, 결국 중요한 것은 외부의 스펙이 아니라 스스로 중심을 잡는 통제력이다. 나는 늘 실력보다 태도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태도가 학습을 만들고, 학습이 결국 실력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Jason은 어디에 있든 결국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나 또한 실력면에서는 가진 것 없는 포기하지 않는 태도 하나 가지고 부딪혀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LBS Sammy Ofer Centre 회의실에서



주저리 주저리


2월 14일 시험을 마치고 나니 다시 잠시 멈춘 상태로 돌아온 느낌이다. 3월 초에는 한국에 2주 정도 다녀올 예정이다. 원래 계획에 있던 일정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매년 몇 차례는 가족을 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으니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굳이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결론을 내리려 하기보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사는지 듣고, 그들의 일상에 공감하며, 그 안에서 소소한 웃음을 나누는 것. 아마 이번 방문의 의미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그런 평범한 교류 속에서 다시 나를 가볍게 만드는 시간일 것이다.


시간이 이렇게 조금씩 지나면서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는 일종의 테스트기가 있어서 점점 또렷한 선을 그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언젠가 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할 것이고, N개의 갈래길 앞에 서서 또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도 분명 오래 고민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묻고, 형·누나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GPT에게 털어놓고, 심지어는 점쟁이나 도사, 사주를 찾아가 누군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길 바라는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하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울 수는 있어도, 타인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고, 결국 내가 내린 답을 실행하는 것만이 남는다. 선택의 무게는 언제나 내 몫이고, 그 무게를 감당하며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결국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어제는 나를 보기 위해 런던까지 찾아온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특별한 관계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평범한 관계다.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친구는 기업에 취업해 결혼했고, 어느덧 다섯 살 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가끔 그런 삶이 어떤지 궁금해져 친구의 아내와 친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어제는 특히 “아이를 낳았으니 행복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는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친구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이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해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것, 그저 하루를 살아내고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부라는 것. 그 말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짜처럼 들렸다.


그리고 친구는 오히려 나 같은 삶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해외에 나와 스스로 공부하고, 다시 도전의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빠르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어 다음 세대를 책임지며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조금 더 치열함 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며 젊음을 보낸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나는 그 둘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어딘가 중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애매함 자체가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위치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나는 그 책임 앞에 설 자격도, 그것을 감당할 의지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일부러 미루거나, 다른 길을 택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만간에는 그 무게를 피하지 않고, 두려움이 있더라도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우리는 서로를 쉽게 평가하지 않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친구는 나의 도전을 응원하고, 나는 친구의 책임을 존중한다.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지만, 그 다름 속에서 오히려 배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친구들의 모습 아닐까 생각한다.


Canary Wharf 에서의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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