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Aug 06. 2023

과유불급

어, 어, 얼음과자 맛이 있다고 한 개 두 개 먹으면 이가 시려요.

어, 어, 얼음과자 맛이 있다고 세 개 네 개 먹으면 배가 아파요.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에서도 알려주는 과유불급의 교훈을 저는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처음엔 시원하고 맛있지만 자꾸 먹으면 입도 텁텁해지고 목도 더 마를뿐더러 양껏 먹었다가는 배탈이 나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적당히 먹어야 합니다. 


적당히 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 기준은 모호하기 일쑤며 내가 그 기준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의 기준과 다른 이의 기준이 같으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복지관 사회재활팀에서 근무할 때 저의 적당한 기준은 이용자 중심이었습니다. 이용자가 복지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이용자의 욕구와 동선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이용자들이 활동한 사진과 작품들을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전시 공간은 복지관 1층에서 4층까지의 계단과 4층 로비였습니다. 천천히 감상하면서 4층까지 올라와 모든 것을 보여드리려는 나름의 기획 의도가 깔린 배치였습니다. 전지 사이즈의 하드보드지에 사진과 그림 등 붙일 수 있는 건 붙였고, 만들기 작품은 책상을 가져와 하얀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이름과 제목을 함께 소개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작품을 모았고 다음 일주일은 정리하고 배치하느라 야근을 매일 같이 했습니다. 함께 준비했던 선생님이 가끔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것도 전시해요?"

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용인들의 손길이 묻은 건 모두 자랑해야 한다고 얼른 자리를 정해 반듯하게 놓았습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을 무렵 팀장님이 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요. 저는 내심 열심히 했다고 칭찬을 받겠거니 기대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쭐할 만큼 많은 작품이 모든 공간에 빼곡히 전시되었거든요. 


"이선생. 수고가 많았지?"

"아니에요."

"그런데 너무 많지 않아?"

"뭐가요?"

"작품이."

"100% 다 놓은 거 아니에요. 더 있어요."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니라 이용인들이 한 걸 전시하는 건 좋은데 너무 정신이 없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과유불급. 알지? 적당히 보이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아."

"아..."


팀장님은 제 어깨를 톡톡 두 번 두드리시고 먼저 돌아섰습니다. 팀장님이 전시품을 보시며 한 바퀴 휘 도는 동안 저의 눈길도 함께 돌았습니다. 정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 키만 한 전시품이 한 뼘 간격으로 주르륵 놓여 있었습니다. 한참 준비할 때는 그저 많이 놓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옆으로 당겨서 하나라도 더 배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구석에 서서 전시장을 한눈에 담아보니 이건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작품들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내가 더 잘났거든?',  '아니, 내가 최고거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귀가 시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프로그램 별로 작품수를 제한하고 완성도가 높은 것들을 다시 추렸습니다. 프로그램 담당자와 다시 논의하여 꼭 전시해야 할 것과 다음에 해도 될 것을 구분하였더니 한결 관람하기 수월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적당한 것의 기준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전시회는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일주일간 전시를 하며 인기 작품도 뽑았고, 복지관을 홍보하는 효과도 톡톡히 누렸습니다. 유관기관에서 프로그램 문의도 꽤 있었거든요. 전시장의 여백과 작품이 모두에게 적당한 기준이었나 봅니다. 


이렇게 '과유불급'을 몸소 체험한 저는 이후 사랑도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이 너무 과하면 아니 준 것만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과하면 부담스럽습니다. 적당히 부족해야 서로 사귀며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날 팀장님이 저를 불러 따끔하게 지적하지 않았다면 작품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소리를 못 들었을 것이고, 그럼 그 전시회는 산만한 채로 마무리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전시회도 전시회지만 인생에 있어 과유불급의 교훈을 지금까지 간직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아이스크림도 적당히 먹는 것이 좋고, 사랑도 사람도 넘치지 않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코뚜레 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