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Jul 16. 2023

코뚜레 회식

'회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진 요즘입니다. 세대가 달라지기도 했고,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더욱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줄어든 회식 탓인지 먹자골목의 가게들이 커피숍이나 브런치 가게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우리 동네 골목에는 장원가마솥통닭과 투다리와 무진장 김치찌개집이 여전히 회식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녁 식사부터 시작해서 술자리까지 이어지며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팀장, 대리인 걸 보면 회사 사람들이 모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예전 나의 코뚜레 회식이 떠올랐습니다.


복지관에 입사한 지 며칠 안 되는 날이었습니다. 반짝거리는 내 책상이 그저 신기했고, 업무일지에 뭘 써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름과 직급을 되새겼고, 사람들의 유형을 파악해서 실수를 줄이고 싶은 마음도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오만 긴장을 다 하고 있어서인지 화장실에 조금 자주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날 그때 화장실에 막 다녀왔을 때였습니다. 부장님이 저에게.


오늘 종로 가자.

종로요? 

어. 종로. 괜찮지?


'아니요. 괜찮을리가요.'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일주일도 채 안 된 신입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 말은 꿀꺽 삼켰습니다. 너무 싫고 곤란했습니다. 종로라면 가는 데만도 최소 한 시간 반 이상 걸릴 텐데 아니 도대체 거길 왜 가자고 하는 걸까요? 이 동네에도 먹을 만한 곳이 널렸을 텐데 취향도 참 독특하시지... 싶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꾸욱 참았습니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된 저로서는 종로로 가는 것도 가는 거지만 낯선 곳에 가서 밤늦게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배탈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고고 배야... 빨리 아파져라!


종로로 가지 않을 핑계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배도 멀쩡했고요. 아니 오히려 배가 고파졌습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니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복지관 식당 밥에 적응 중이라 많이 먹지 못했거든요. 할 수 없다 싶었습니다. 종로에 가서 파전을 먹는다고 했으니 거기서 파전이나 실컷 먹고 얼른 집으로 오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 순간 부장님이 가방을 들고 나서며 "15분 후에 종로파전에서 만나자고!"라고 하셨습니다. 종로까지 15분? 150분이 아니고? 어찌 된 일인지 몰라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종로파전 회식 약속을 한 것이었고, 종로파전은 다름 아닌 복지관과 지근거리에 있는 파전집 상호였던 것입니다. 간판이 '종로파전'인 것을 두고 다들 '종로'라고 불렀나 봅니다. 저는 신입이었으니 그걸 알 리 없었던 겁니다. 사무실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설명을 했으니 역시 들었을 리 없었고요. 어쨌든 150분이 아닌 15분 거리에 있는 '종로'로 갔습니다. 파전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고요. 저의 첫 회식은 파전과 양파절임을 잔뜩 먹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 뒤로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의 회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홋! 소리가 나오는 신나는 회식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소 코뚜레하듯 억지로 가는 자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거절할 만한 용기도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코뚜레를 스스로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적응인지 포기인지 모를 그사이 어디쯤 되는 마음으로 업무의 연장, 회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회식이 재미없었다...라고 끝을 맺으면 너무 재미없지요? 재미있는 건 저는 나중에 회식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팀장님의 선언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팀장님이 회식을 한 달에 한 번 한다고 하셨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는 두셨지만 여하튼 대폭 줄인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회식을 조금 길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1박 2일 정도? 처음에는 모두들 "헉."소리를 냈지만 나중에는 모두가 정말 좋아했습니다. 


1박 2일이라면 이건 회식이 아니라 워크숍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붙이기로는 회식이라고 했지만요.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태백산 야간산행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야간산행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헤드랜턴과 아이젠, 등산스틱, 토시 등을 구매했습니다. 겨울 야간 산행을 위해 우리 팀은 공동구매도 하고 등산로에 대한 회의도 했습니다. 물론 업무 시간 외에 해야 했으니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한 후 주말 1박 2일 동안에 설산에 다녀왔습니다. 아직까지도 눈 내린 태백산 정상에서 맞이했던 그 아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서늘하도록 하얀 풍경에 우리가 내뿜는 입김이 채도를 달리하며 녹아드는 장면이 마치 사진처럼 뇌리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회식이었습니다. 


그 뒤를 잇는 회식은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을 자전거로 달린 것이었습니다. 승합차와 개인차에 자전거를 나눠 싣고 안면도로 갔습니다. 저녁에 도착했으니 해수욕장의 야경을 바라보며 꽃게탕 회식을 했습니다. 아마도 작은 회식이라고 하면 적당하겠지요? 본격적인 회식은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꽃지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달린 것이었습니다. 자전거 바퀴가 뱅뱅 돌며 모래밭 끝에 도착한 파도의 끄트머리를 헤쳤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지는 물줄기로 바짓단을 적시며 꺄~~~ 소리를 질러대던 장면이 사진처럼 뇌리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최고의 회식이었으니까요.


그 밖에도 최고의 순간이 몇 개 더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기억은 그야말로 '라떼~~' 회식일 것입니다. 지금 20대 청년 사원들에게 이렇게 떠나자고 하면 과연 가능할까 싶거든요. 그렇다면 그때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저도 그걸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선 팀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적으면 네 명, 많았을 때는 여섯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미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결혼한 직원도 있었지만 부부가 서로의 직장생활에 대해 존중하는 사람들이었기에(아직도 그 부부는 여전히 그렇습니다) 워크숍 같은 회식이 가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준비는 팀장님이 했습니다. 장소, 준비물, 일정이 만장일치로 결정될 수 있었던 건 팀장님의 꼼꼼한 발품 덕분이었습니다. 


마지막 리더의 역할은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다른 팀이 일반적인 회식을 할 때 우리는 조금 남다르다는 것 외에 팀장님의 수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단합이 잘 되는 팀이라는 게 자랑스러웠을 뿐이죠.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조차도 팀장님이 우리의 코를 잘 뚫어 교묘하게 즐거운 코뚜레를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팀원들의 의견을 묻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코가 꿰였던 거죠. 


억지로 했던 코뚜레도 시나브로 당했던 코뚜레도 모두 회식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단체를 끌어가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모여서 뭘 먹어야 한다는 걸까요? 그렇게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 네 마음과 내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회식의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 라떼~ 회식도 지금의 회식도 서로 친해지기 위한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직업재활팀 실습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