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Jul 02. 2023

직업재활팀 실습생

실습(實習)이란 이미 배운 이론을 토대로 직접 해 보는 것입니다. '해보면 안다'와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운 사회복지의 지식들을 실천하고 익히기 위해 저도 실습을 나갔었습니다. 실습은 '한다'라는 표현보다 '나간다'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 표현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학교는 '간다'가 더 적합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교'로' 향하니까요. 그런데 실습은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 학교가 아닌 기관으로 배움의 장소를 옮기는 것이므로 학교를 한 번 찍고 기관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실습에 대한 서술어를 이리도 길게 설명한 것은 학생인지 직원인지 정체를 분명히 할 수 없는 상황이 실습 중에 종종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저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 중 제일 관심 있는 분야였으므로 실습 기관을 선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관에서도 실습생이 여럿 필요하다고 했으므로 모든 절차가 수월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G복지관으로 실습을 나갔습니다.


실습 첫날, 복지관 상담실에 실습생들끼리 동그랗게 모여 앉았습니다. 서로들 어색해서 눈치만 살피며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워낙 낯을 가리기도 했고 상담실 내부 환경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이름만 상담실이지 사실은 창고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구석에 쌓여 있는 의자들과 그 의자를 덮고 있던 먼지를 보며 우리는 입을 열고 말하는 대신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곧 실습 담당 선생님이 들어와 자기소개와 G복지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리곤 우리를 데리고 나와 복지관 여기저기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실습생들이 일렬로 쪼르륵 줄을 서서 마치 꼬리잡기 놀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램실의 문을 열고 머리 부분이 들어갔다가 나오면 꼬리 부분이 들어가기를 반복했고, 모든 실을 둘러봤을 무렵 우리는 적당히 지쳤습니다. 실습생들은 상담실로 돌아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까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후 실습 담당 선생님이 다시 들어와 한 명 혹은 두 명씩 불러 세워 "보호작업장으로 가세요.", "운영지원팀으로 가세요."라고 소속을 정해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다른 실습생 한 명은 마지막까지 호명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여기서 기다리세요."라며 그 선생님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안녕하냐는 인사를 나누며 어느 학교에서 왔고 집이 어디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 직원 서너 분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엉거주춤 일어났고 그분들은 직업재활팀이라고 하면서 우리더러 편하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직업재활팀에 배치되었다는 걸 알았고 절대 편하게 앉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 첫 번째로 맡겨진 업무가 바로 상담실 청소였거든요. 어쩐지 처음부터 의자 위 먼지들이 눈에 거슬린 이유가 이거였나 봅니다. 허허.


상담실 청소로 직업재활팀 실습생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 위한 준비 과정과 작업능력을 평가하는 방법들, 취업 가능한 기업을 개발하고 꾸준한 사후관리까지 공부해야 했습니다. 실습 첫 일주일은 과제 발표를 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쾌적한 상담실은 직업재활팀 바로 옆이었기에 우리 두 실습생은 상담실이 우리 사무실인 것처럼 지냈습니다. 


아침이면 우리만의 사무실로 출근을 했습니다. 책상을 닦고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어제저녁에 뭐 했는지 스몰 토크를 했습니다. 과제 발표 기간이 끝났는지 우리는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취직을 하겠다'라고 찾은 분들에게 직업상담을 하고, 기존에 취업한 장애인을 찾아가 근무 만족도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회사 담당자와 사후 관리에 대한 평가를 하는 등 다양한 '실습'을 했습니다. 


실습생이라고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있었음에도 우리를 실습생 또는 학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보통 '선생님'이라 부르며 도움을 청하거나 대화를 이어나갔으니까요. 아마도 우리가 실습생인지 직원인지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라는 것이 제일 컸을 테니까요. 그렇게 직원과 실습생의 기준이 모호해질 무렵 우리의 실습기간은 종료되었고 이전보다 훨씬 쾌적해진 상담실에서 마지막 평가회의를 했습니다. 


저에게 제일 기억에 남았던 일은 장애인 취업 사후 관리를 갔을 때 사장님이 장애인 고용에 대한 하소연을 한 것입니다. 당시 사장님 맞은편에 앉은 저는 속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라고 했었거든요. 실습생을 앞에 앉혀 놓고 장애인 고용 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장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거든요. 


만약 지금 똑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셨군요. 많이 속상하셨겠어요."라고 했을 겁니다. 그때는 제가 실습을 나가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직원인 것 같은 직원 아닌 직원처럼 행동하느라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융통성보다 호기심이 더 많았던 거죠. 그게 실습생의 특징이 아닐까요? G복지관 직업재활팀으로 실습을 나가서 비로소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두 배로 사'라는 제목은 저의 딸아이가 의사, 변호사, 판사가 좋은 직업이라면 회복지는 '사'가 두 번이나 들어가므로 두 배는 더 좋은 직업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 엄마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1종 보통 운전면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