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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Sep 04. 2023

새벽을 깨우는 소리

살림 1-1 주방

05:30 띠리링 띠리링.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뒤집어 알람을 끈다.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으며 안방을 나와 주방으로 향한다. 1분도 안 걸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눈을 뜨고, 하품도 하고, 기지개도 켜며, 스위치를 올려 불을 밝히고, 오른손을 뻗어 커피 머신 전원 단추도 누른다.


지그르르 콰르르르... 홀빈이 가루로 부서지는 소리는 무척이나 요란하다. 밤새 안녕히 자고 있던 집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커피 머신이 정수기에게 잘 잤냐고 인사하면 정수기가 쪼르륵... 그렇다고 인사를 받는다. 정수기는 주전자에게 아침인사를 전달하고 주전자는 펄펄 끓는 물로 다시 나에게 "일어나~~~"라고 뜨거운 김을 뿜어댄다.


우리 집 새벽을 깨우는 건 나와 커피머신과 정수기와 전기주전자다. 이 세상에 동서남북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는 넷 중 누구 하나 빠질 수 없다. 주방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새벽동지들이다. 그래서 귀한 대접받는 살림이다. 이 집에 귀하지 않은 살림이 어디 있겠냐 마는 그중 하루를 깨우는 새벽동지들은 시작을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뜻깊다.


커피 머신에서 쪼르르 에스프레소가 나오는 소리는 아까 지그르르 콰르르르 집 전체를 흔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진한 커피 향을 함께 풍기기 때문이다. 시작은 약간 씁쓸하지만 집안 곳곳으로 퍼질수록 은은해져서 가족들을 부드럽게 감싼다. 나는 안방과 아이들 방문을 열어 아침의 상쾌함과 커피의 묵직함을 가족들에게 전한다. 주방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퍼지는 그 신호는 가족들의 귀와 코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동안 나는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메뉴는 늘 다르지만 시간은 얼추 20분 정도 걸린다. 남편을 먼저 깨우고 큰아이, 둘째, 막내 순으로 출근과 등교를 마치고 나면 나의 하루 중 1회전이 마무리된다. 이 모든 일이 주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커피와 함께 시작한 1회전은 아침 설거지를 마친 후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때도 역시 동서남북 새벽동지들이 합을 맞춘다. 


나의 주방은 하루의 시작이며 중심이다. 여기서 커피가 차지하는 자리는 북이다. 나침반도 북을 중심으로 바늘이 자리잡으니까.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동에서 정수기가 물을 끌어올리며, 서에 있는 주전가가 끓인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마시고 따뜻한 남쪽 나라가 된다. 


아침부터 빈속에 커피 마신다고 걱정과 염려는 마시라. 커피는 간에도 좋고 치매 발병율을 낮추며 당뇨를 예방하는 등 부작용보다 순작용이 많은 기호식품이니까.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블랙커피는 아이들도 한 잔씩 마신다. 우리 가족의 커피 취향은 까다롭지는 않지만 꺼리는 것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산미다. 산미 수치가 높은 커피를 마시면 혀를 부르르 떨며 "엄마~!"  또는 "여보~!"를 찾는다. 이건 아니라는 거다. 산미가 풍부한 커피가 고급이라지만 그건 우리 기준과 거리가 멀다. 우리 가족은 묵직한 바디감과 산미가 거의 없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새벽을 깨우기에는 커피가 제격이다. 아침 메뉴는 통일하기 어려워도 커피 맛으로 중지를 모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그랬고 내일 아침에도 여전히 나의 주방에서는 지그르르 콰르르르 소리를 내며 새벽을 깨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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