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새해 결심
Go, Back - 26 엄마의 뒷짐이 필요한 시기
금년에 고3이 된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이 크다. 설이라고 가족들이 모였으니 눈만 마주치면 괜찮냐, 공부는 잘 되냐, 대학은 정했는지 아이에게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물론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걸 알지만 옆에서 보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다. 혹여 아이가 마음의 부담을 가질까 봐, 기대대로 되지 않아 엇나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눈길로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는 의외로 밝았다. 괜찮다며 선뜻 대답도 하며 어느 대학에 가고 싶은지 정확하게 학교 이름을 대기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그 대학의 점수와 전형들을 헤아리며 내 아이가 합격 가능한지 혼자 재고 따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공부 계획표부터 작성해야 할 텐데? 당장에 국, 영, 수, 과, 사에 대한 적합한 접근이 필요할 텐데? 당장에 아이를 불러다가 의논을 할까? 네 목표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달려보자고?
그랬다간 어떤 사달이 날지 모른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이와 피 튀기게 부딪히며 깨닫지 않았던가! 사회 통념상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퉁치기에는 너무 간단했다. 아이도 아이지만 엄마인 내 인생은 마치 암흑과 같았다. 암흑인데 허구한 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었다. 게다가 지붕도 없는 벌판에서 그 혹독한 날씨를 오롯이 내 몸뚱이로 받아내는 기분이었달까? 이제 겨우 딱쟁이가 앉은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몸이 살짝 떨렸다.
엄마의 두 손 육아는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가 절정기다. 학교에 입학하며 슬슬 뒷짐 육아로 갈아타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 탓인지, 아이가 예민했던 탓인지, 내가 극성 엄마였던 탓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너무 늦은 뒷짐 육아를 깨닫고 있다.
새해 결심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한 아이에게 어떻게 얼마나 어떤 공부를 할 거냐고 따지고 묻는다면 '땡!'이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함께 해보자는 엄마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공부는 당사자의 몫이며, 이 시점에서 당사자는 누가 보아도 엄마가 아닌 아이다. 그리고 아이의 입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나온 이상 이후 상황을 따져 묻는 건 월권이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고 묻는 광고 문구처럼 니들이 대입을 알어?라는 질문을 받아 들고 나는 허둥지둥 엉거주춤하고 있지 않은가. 너무 복잡하네, 비합리적이네, 애들만 잡고 있다는 등의 불만을 토로했던 학부모가 바로 나다. 정리하자면 그 제도 안에 내 아이가 있으니 긍정적으로 '괜찮다'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비뚤어지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것마냥 반항적이던 아이가 밝게 웃게 된 건 여러 계기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었다. 내가 암흑을 헤매던 그때 아이도 마찬가지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모두 터널 끝의 한 줄기 빛을 본 순간 뭐가 되어도 저기로만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힘겨운 발을 내디뎠다. 아이도 나도.
그러니 괜찮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을 믿는다. 이번에는 엄마의 두 팔을 걷어붙일 차례가 아니다. 오히려 뒷짐을 지고 아이가 가는 대로 바라보는 지혜가 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이 지혜인지 인내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다만 응원의 눈빛을 쏘아대자. 번개가 번쩍였던 것만큼만 쏘아대는 것이 나의 금년 목표다. 아이도 나도 목표를 이루는 한 해를 위해 뒷짐 지고 응원한다. 뒤에서 깍지를 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