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인생 멘토
멘토란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이때 나의 어려움은 여행으로 인한 피곤이었는데 세 아이들의 궁둥이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숙소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못했다. 꼬꼬마 멘토들을 따라다녔던 저때의 여행처럼,,, 오늘의 글도 벗님들 따라 시작해 본다.
멘토란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내 인생의 첫 어려움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체육 시험이었다. 그때 나의 멘토는 아빠였다.
중간고사였을 것이다. 수학과 체육은 2교시에 치렀고, 주요 과목과 곁다리 과목이 짝꿍으로 시험지 한 장에 출제되었고,,, 수학이 아니라 아마도 '산수'였을 것이다. '국민학교'였으니까. 수학 아니... 산수는 다 맞았는데 체육은 빵점이었다. 만점과 빵점이 시험지 한 장에 있었다.
"미칼라. 체육이 어려웠니?"
"아니."
"근데 왜 빵점이야?"
"못 풀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1번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종이 쳤어."
"미칼라. 1번이 헷갈렸니?"
"응."
"헷갈릴 때는 3번으로 찍어."
"...?"
"우선 찍고 다음 문제를 푸는 거야."
"아빠. 내가 모르는 건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나는 정말 놀라웠다. 시험은 자기가 아는 걸 푸는 거 아닌가? 내가 모르는데 3번이라고 표시해도 괜찮다는 아빠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그만큼 융통성이 부족한 아이였고, 또 아빠가 하라면 곧이곧대로 하는 아이였기에 그 후 40년 동안 모르는 문제는 고민 없이 3번이었다. 나의 멘토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아빠 말고도 내 인생의 고비마다 잡아주고 끌어준 이들이 많다. 모두를 멘토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외에 나에겐 특별한 멘토가 더 있다. 바로 타산지석이다. 타인의 잘못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때가 많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의 별명은 킹콩이었다. 애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영어 못한다고 우리에게 욕을 지껄였다. "나는 저 인간처럼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아이들이 몰라서 배우는 거지 알면 뭐 하러 교실에 있겠나... 절대 킹콩처럼 되면 안 되겠다는 타산지석을 멘토로 삼았다.
고등학교 때 한문 선생님은 출석부로 내 머리를 때렸다. 머리를 너무 짧게 잘랐다는 이유였다. "나는 저 인간처럼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내 머리는 숏컷트도 아니었고 단발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노처녀 한문 선생님이 선을 봤는데 남자한테 까여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 감정에 치우쳐 아이들을 체벌하면 안 된다는 타산지석의 멘토를 얻었다.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 다양한 가정을 만났다. 주로 문제가 심각한 가정들이었고, 복지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아 더 곤란한 상황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가정 문제의 원인을 뭐 하나로 딱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대부분 부모였다. 일부 부모들은 잘해보려고 하는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개미지옥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타산지석은 몸과 마음이 바로 서야 사람 구실 한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너무 많다. 지구인 중 대부분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나는 보고 배울 사람이 너무 많아 누구를 따라야 할지 곤란했다. 그래서 나의 멘토는 타산지석이다. 그것만 하지 않으면 절반은 갈 것 같아서.
오늘도 절반에 다다르기 위해 타산지석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