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너

13 - 나에게 쓰는 편지

by 미칼라책방



2.jpg
1.jpg
3.jpg
아라비아해에서 만난 큰 배와 작은 배


경혜에게.


벌써 13번째 글이야. 실감 나니? 12번의 글을 쓰면서 너 한 번도 마감을 놓친 적이 없더라. 그런 점에서 너 쫌 별로야. 그냥 천천히... 다른 분들처럼 생각하는 시간을 좀 더 가지면서 썼어도 될 텐데 그걸 굳이 바락바락 지킬 건 뭐니. 인간미 떨어지게. 다음엔 한 번쯤은 늦어 보길 바라. 그게 너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 거야.


그리고 너 글쓰기 루틴이 있는 거 알았어? 나도 이번에 알았잖아. 너 사진이 없으면 글 시작을 못하더라. 푸하하. 하얀 화면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왜 째려봤어? 째려보면 글이 나온다니? 그런데 사진을 내거니까 거짓말처럼 쓰기 시작하더라. 그걸 보면서 걱정도 되었고, 자랑스럽기도 했어.


사진이 없는 글을 써야 할 때도 분명 있을 텐데... 미리부터 걱정이 앞섰어. 자랑스러웠던 건 루틴이라는 게 말이야 무언가가 만들어졌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너... 작가가 되는 거야? 유후~! 글을 쓰기 위한 루틴이 생겼다는 건 어찌 되었든 쓴다는 거잖아. 글을! 너의 글을!


아라비아 해에서 큰 배와 작은 배를 만났을 때 기억나니? 작은 배가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큰 배의 항해 방향을 잡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너의 부모님과 너의 아이들을 생각했잖아. 부모님이 너의 길을 그렇게 잡아 주었을 것이고, 너도 아이들에게 똑같이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거라고. 배의 크기가 작다고 존재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된다고 했었잖아.


겨울 글쓰기를 하면서 너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은 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 누구나 자신만의 영역이 있잖아? 오늘 아침만 해도 잡채 한 접시를 한 시간이나 걸려서 만들었잖아. 너는 요리 쪽으로는 존재감을 갖기 어려울 것 같아. 그건 너도 인정하지? 글로 너를 부각하는 게 훨씬 빠르고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결심했어. 뭐만 봤다 하면 사진을 찍기로. 그래서 네게 넘길게. 써 줘. 내가 찍는 만큼 너는 쓰는 걸로 하자. 그래서 존재감 갑으로 남자. 대체 불가능한 너로. 나는 영원히 너를 응원하고 사랑할 거야. 너니까.



2022. 01. 21.


내가 나에게~ 사랑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