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Mar 26. 2022

괜찮아~ 안 물어!

Go, Back - 24


5월에 결혼하고 7월에 설악산 야간산행을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이 비치는 길을 따라 설악산을 올랐고, 예상치 못했던 고된 산행으로 우리는 토하기 직전이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주간 산행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기에 그 뒤로 야간산행은 잘 안 가게 되었다. 따라서 헤드랜턴은 케이스에 담겨 빛을 볼 일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면서 고층에서 저층으로 옮기다가 결국 1층에 안착했다. 아파트 1층은 조금 춥다는 것 외에는 다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발소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창 밖 화단은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에 춥다는 단점은 충분히 보완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여름이었다. 베란다 창을 열고 있으니 비와 함께 살랑이는 바람이 너무나 좋았다. 베란다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면 우산을 쓰고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미있었고, 하늘에서 떨어지다가 방충망에 부딪혀 부서지는 빗방울 조각들을 맞을 수 있어서 상쾌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비가 그쳤다. 촉촉한 밤바람을 맞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혹여 심어 놓은 꽃들이 장맛비에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살피다가 나는 기절할 뻔했다... 감나무를 스멀스멀 타고 올라가는 저건 뭐지? 약간 초록빛을 띠고 있었으며 통통하고 큰 번데기 같았다. 앗! 수년을 땅 밑에서 보내고 올라오는 매미 유충이었다. 


남편은 급히 집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헤드랜턴을 차고 있었다. 설악산 이후로 처음 꺼내는 것 같았다. 밝게 빛나는 이마들이 화단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서, 꾸물꾸물 올라가는 초록빛 통통이들을 찾고 있었다. 비가 막 그친 뒤라 양말은 물론이고 바짓단이 젖는 것도 불사하며 매미들을 찾았다. 감나무에도 있었고, 주목에도, 벚나무와 살구나무까지. 어떤 통통이는 나무를 찾지 못했는지 옥잠화와 비비추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먼저 올라온 통통이들은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통통이들이 마르면서 초록빛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설명해 주어서 알았다. '곤충교실 몇 년 다니더니 곤충 박사가 다 되었구나'라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으쓱해하면서도 쭈글쭈글 구겨진 날개를 허물에서 힘겹게 꺼내는 매미를 응원하기에 바빴다. 온통 매미였다. 매미 아니면 매미로 되고 있는 과정이었고, 그도 아니면 날개를 말리고 있는 초록 통통이들이었다. 매미 천지였다.

다음날 남편과 아이들은 바구니를 하나씩 둘러메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돈다며 나갔다.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벌레가 너무 무섭기 때문에 거절했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네 명이 개선장군처럼 또는 전리품을 잔뜩 챙긴 장수처럼 들어왔다. 각자의 바구니에는 매미 허물이 천지 빼까리였다. 큰 쟁반에 신문지를 깔고 허물을 죽 늘어놓았다. 매미들이 진시황제의 병마들처럼 늠름하게 도열해 있었다. 

바삭하게 말린 후 각자의 통에 매미 허물을 보관했다. 일회용 김을 먹고 남은 방부제를 넣어주었다. 그래서인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멀쩡하게 담겨 있다. 가끔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면 나는 질색팔색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 괜찮아. 새우깡 냄새야. 엄마 새우깡 좋아하잖아. 그리고 이거 안 물어."

물지 않아도 나는 물린 것 같다. 아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