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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Feb 27. 2022

믿음을 주고받는 사이 커버린 아이들

Go, Back - 23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여름휴가도 늘 시댁으로 갔었다. 너무 멀어 어른들을 자주 뵙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고, 잔잔한 농사일이 많을 철이었기 때문이다. 오전 중에 집안일을 대강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강으로 갔다. 중간중간 놓여있는 보에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기에 딱 좋았다. 큰아이가 깊은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아빠에게 먼저 요청했고, 아빠는 그러마고 나섰는데 아이는 처음과는 다르게 겁이 조금 났나 보다.

"아빠~! 장난치면 안 돼!"

"알았어~ 이리 와~"

"아빠~! 살살 들어가야 해!"

"알았어~ 꼭 잡아."

"으~ 아~ 하~ 하! 하!"

"OO아~ 좋아?"

"어~ 너무 좋아~ 야! 얘들아 진짜 재밌어!!!"

큰아이는 깊은 물에 들어간 짜릿함을 만끽하며 동생들에게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우리 가족 중에 제일 겁쟁이라 발가락도 담그지 못했고, 남편이 아이들을 번갈아가며 계속 데리고 들어갔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이었다. 아빠는 출렁거리는 물살에서 짜릿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는 최첨단 놀이기구였다. 아빠의 손길은 순간순간 닥쳐오는 불안함을 모두 막아주고 있었다. 큰아이는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믿음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도 물론 남편을 믿지만 손을 잡고 물에 들어갈 만큼은 아니다. 남편에 대한 믿음보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큰아이가 아빠를 불러 물에 들어가겠다고 한 그 순간 아이도 분명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인데 아빠에 대한 믿음이 그 두려움을 누르고 있었다. 

아이가 부모를 믿었던 그 마음이 성장하면서 부모가 아이를 믿는 것으로 바뀌는 것 같다. 이제는 나와 남편이 아이를 더 믿는다. 아이가 혹여 잘못될까,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 불안한 감정들을 믿음이 꾸욱 누르고 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은 날로 커진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매 순간 따라다니며 돌봐주던 꼬마가 아니니까. 그 믿음이 없다면 아이를 과연 현관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아이가 성장하는 것보다 다 더 큰 믿음이 아이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보호하고 있다.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던 그때는 아이들이 우리를 믿어줬고, 지금은 우리가 아이들을 믿고 있다. 묵직한 발자국 소리를 낼만큼 커버린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믿음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믿음을 주고받는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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