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고3은 어떠셨나요? 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꽤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아이들을 키우며 과거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기억을 더듬는 건 아이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해를 위한 회상을 하면 할수록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듭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엄마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엄마이기에 이해하려고 하지만, 같은 이유로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엄마라서 고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 대한 공감을 막는 장애물도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제 고민과 공감은 늘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좋은 성적과 인성과 웃음과 배려가 가득한 아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다 큰 아이를 끼고 앉아 공부를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석봉 모친처럼 떡을 썰 수도 없습니다.
고민의 주제를 돌고 돌았지만 결국 이른 곳은 '엄마'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저는 저절로 엄마가 되었습니다. 누가 임명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엄마였죠. 엄마가 되는 것이 이렇게도 쉬운데 이상하게도 저는 18년째 엄마가 어렵습니다. 이게 맞나? 저거였나? 내가 실수한 걸까? 잘하고 있는 건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며 저는 아직도 엄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엄마의 시작점보다 엄마의 과정을 자꾸만 들여다보는 건 완료되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들추고 들추다 보니 아이들 어렸을 적 사진을 보기에 이르렀습니다. 꼬꼬마 때 사진을 보며 그 시절 제가 가졌던 바람과 생각들을 떠올렸습니다. 다름 아닌 아이들의 행복이요. 과거 사진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다른 날에는 그날의 냄새도 나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와 냄새 그리고 그날의 마음가짐까지 되새기며 저는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수 년 전의 장면들이 감자줄기처럼 주렁주렁 달려 나왔습니다. 그때 아이가 했던 말, 표정, 몸짓이 영화처럼 재생되었습니다. 그때의 꼬꼬마가 지금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며 교복 입은 모습으로 현관문을 나설 때 코 끌이 찡합니다.
너도 크느라 수고가 많다.
이런 문장이 떠오르며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졌습니다. 물론 다시 당겨지기도 하고, 아이와 투닥거리며 밀당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의 추억을 글로 남기면서 그때 마음이 현재의 나에게로 전해집니다. 아프지만 말아다오. 건강하게만 커다오. 이런 마음 있잖아요. 그래서 아이를 달달 볶다가도 힘껏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여유는 아이와 저 사이에 적당한 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도 저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안전거리 같은 거요.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큰아이에게 엄마와의 적당한 거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엄마이기에 마치 내가 고3이 된 것처럼 비장해지고, 결연한 다짐을 아이에게 전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이에게 부담을 넘어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그래서 아이와의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부담도 독도 떨어뜨려 봅니다.
그 틈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와 지냈던 시간들을 곱씹어 글로 남깁니다. 함께 다녔던 장소들, 엄마의 의도를 담은 일정들, 아이의 의지가 넘쳐났던 장면들을 모아보니 엄마도 아이도 모두 수고했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교육 정보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육아 멘토가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에세이가 되겠지요. 제게는 고3 엄마를 예약하는 티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