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닐 때 저는 제 인생에서 제일 가벼웠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임신 했을 때 말고는 큰 변화 없는 체중이었는데 꼬꼬마 셋일 때만큼은 “너 어디 아파?”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까요. 끼니 챙겨 먹는 건 호사 중 호사였고,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저에게 어른들은 ‘그때가 좋을 때’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뭐가 좋을까? 살이 빠져서? 아파 보인다는 것이 분명 칭찬은 아닐 것인데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며 행복한 시간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라면 머뭇거리며 생각 좀 해보겠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냥 좋았던 때라는 것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꼬마들이 한참 저지레를 하며 다닐 때 ‘나는 참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엄마가 몇이나 될까요? 1L 우유를 거꾸로 들고 뛰어다니거나, 화창한 날에 비옷과 우산과 비닐 장화를 신고, 빈칸에 붙여야 할 스티커를 온 얼굴에 붙이거나, 짜장면을 먹인 후 귓구멍에서 면발을 꺼내며 목욕을 시켜야 했을 때 나는 행복했을까요? 좋았을까요? 글쎄요...
색연필 들고 여기저기 낙서를 시작했을 때 방바닥에 종이를 넓게 깔아주었고, 방한용 장갑을 손이 아닌 발에 끼고 공룡처럼 기어서 등장했을 때 저는 기절하는 척했습니다. 놀이터에 간다며 가방을 7개 챙긴 아이에게 그러지 말자고 설득했지만 실패해서 저는 그냥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중에 두고 보자며 증거 제출용으로 찍었는데, 나중이 된 지금 그 사진을 보며 저는 헤실헤실 웃고 있습니다. 행복했나 봅니다. 좋았나 봅니다.
LG DIOS 냉장고 박스를 주워와 꼬마들의 집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하하 웃었습니다. DIOS 집안에서 낮잠도 자고 간식도 먹었습니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현관문도 있었고, 번듯한 창문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창을 열고 “여기 핫도그 두 개요!” 주문을 하면 저는 토마토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 배달했습니다. 빨간 하트를 남발하던 그때가 저도 좋았을 겁니다. 다만 육아의 기쁨보다 바쁨이 조금 더 나를 떠밀었을 뿐이었겠죠.
두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앞뒤로 업고 안았습니다. 또는 양쪽 허리춤에 한 명씩 안으면 두 팔은 아이들을 감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발을 사용할 수밖에요. 그래서 양발에 걸레를 하나씩 깔고 밟아 자장가를 부르며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일타 양피.
지금은 육아로 인해 그렇게 바쁘진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양발에 걸레를 끼고 돌아다녀야 했다면 아이들의 사진을 들출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그때가 좋았는지 슬펐는지조차 아리송했을 겁니다. 육아의 연차가 쌓일수록 여유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때가 좋았으니 지금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때도 좋았으니, 지금도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