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부부
1. 부부는 가장 현재의 관계처럼 보입니다.
지금 함께 살고, 지금 대화하고, 지금 선택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관계의 문제 역시 지금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 하지만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은 지금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오래 불편해지고, 크지 않은 일에도 과하게 서운해집니다.
상대는 그저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어디선가 익숙한 감정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 사람의 말이라기보다, 오래 전의 장면이 다시 열립니다.
3. 부부 싸움은 사건보다, 다시 열리는 감정이 더 크게 작동합니다.
무시당한 기분.
혼자 남겨진 감각.
설명해도 닿지 않을 것 같은 체념.
상대와 싸우고 있지만, 실은 지금의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겹쳐 보이는 과거와 마주하고 있는 순간도 있습니다.
4. 그래서 부부는 서로를 보기보다, 기억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때로는 이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장면을 다시 설득하려 애쓰는지도 모릅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 관계가 특별한 이유는, 이 관계를 계속할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붙잡아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6. 부부가 오래 함께 산다는 것은 갈등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상대와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분리해 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말은 지금의 말로 듣고,
지금의 표정은 지금의 표정으로 보려는 노력.
가족은 그렇게 가장 현재 같지만, 과거가 드러나는 자리에서 다시 현재를 선택하는 관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