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상담자는 '자격증'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할까?

제5화

by 그래도

1.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나요?”

상담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이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아, 조금은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어서겠지’하고 짐작합니다.

물론 자격은 필요합니다. 일정 수준의 학습과 훈련을 통과했다는 객관적 지표가 되어주니까요.

그런데 그 질문이 너무 빠르게, 너무 자주 반복될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상담을 배우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자격을 갖추고 싶은 것’일까?


2. 자격증이라는 말엔 묘한 힘이 있습니다.

‘공인된 존재’, ‘누군가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감각을 줍니다. 훈련 과정에서 수많은 평가를 받는 상담자에게, 이 자격은 일종의 ‘안전지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격증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을 덮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아직 이 자격이 없으니 나는 상담자가 아니야’, ‘이것만 따면, 나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상담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격을 위한 공부만 남게 됩니다.


3. 자격은 불안한 마음을 가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외피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이름표’ 하나가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격을 요구하는 건 단지 개인의 불안 때문만은 아닙니다. 상담자 자신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외부의 목소리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자격증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왜 내가 이걸 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없이, 자격이 곧 나의 상담자 됨을 보장해 줄 거라 믿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자리 잡으면, 상담실에서도 자신이 자격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삶도, 상담도 누구에게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괴로울 것 같은데 말입니다.


4. 그렇게 자격에 집중된 시선은 상담실 안으로도 들어옵니다.

그러나 실제 상담 현장에서 자격이 중요한 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상담실에 들어서는 내담자는 ‘이 사람이 몇 급인지’, ‘공식 자격이 있는지’ 보다 ‘이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만나고 있는가’를 느끼려 합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자격보다 정서적 존재감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상담자 자신’이요.


5. 자격 불안은 종종 ‘내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불안은 새로운 공부를 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불안 자체를 감추기 위한 스펙 쌓기가 됩니다.

자격증을 더 따고, 타이틀을 늘리고, 인증을 반복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나는 정말 이 일을 잘하고 있는가?”


6. 자격증이 없으면 불안하고, 있어도 안심이 되지 않는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기준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제도’가 아니라, 함께하는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태도’ 안에서만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7. 배움은 늘어가는데, 자격은 점점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내담자의 한숨 앞에서, 자격증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때 필요한 건, 내가 그 자리에 ‘자격 있는 사람’이기 전에, ‘살아 있는 사람’으로 함께 있으려는 태도입니다.


8.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이에게 OO가 없었다면 저이는 저이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저이에게 훤한 얼굴이 없었다면, 저이에게 출신 학교가 없었다면,

저이에게 든든한 부모가 없었다면, 저이에게 장성한 자식이 없었다면,

저이에게 번듯한 직장이 없었다면,

주목받을 외모가 없고 으스댈 학벌이 없고 기댈 언덕이 없고,

내세울 자식이 없고 내밀 명함 하나가 없어도”

이윤주,「나를 견디는 시간」


이 글이 말하듯, 우리는 타이틀이 아닌 존재 자체로 있을 때 누군가 앞에 진심으로 머무를 수 있습니다. 자격은 내가 누군가임을 증명해 주는 조건일 수 있지만, 존재는 그 어떤 조건 없이 거기 있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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