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1. “저에 대해 알고 싶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들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왜 고민이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꽤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모른다고 느낍니다.
2. 그래서 저는 먼저 이렇게 묻곤 합니다.
“본인이 아시는 자기 모습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러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반복되는 고민, 잊히지 않는 경험들…. 듣다 보면 내담자도 이미 제법 알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나는 나를 모르겠다”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3. 왜 그럴까요?
아마 살아오면서 이런 질문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니?”
“넌 뭘 좋아하니?”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이런 물음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아는 것도 정리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꺼내려하면 말이 빛을 잃습니다.
4.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남의 눈에 비친 모습으로만 살아왔습니다.
부모가 보던 나, 선생님이 평가하던 나, 사회가 요구하는 나…. 그렇게 타인의 거울 속에서만 살다 보니,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알고 싶다”는 말은 몰라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남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다는 표현일지 모릅니다.
5. 특히 이런 말은 인생의 전환기에 자주 나옵니다.
직장이나 관계가 바뀔 때, 혹은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이 문득 멈추었을 때.
그제야 ‘나는 누구로 살아왔고, 앞으로 누구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자신을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아는 나와 내가 살아내는 나 사이의 틈입니다.
“나는 활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임에 가면 늘 지쳐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난다.”
알고 있는 자기와 살아내는 자기가 어긋날 때, 사람들은 ‘나는 나를 잘 모른다’는 혼란에 빠집니다.
6. 그래서 상담실에서의 “자기를 알고 싶다”는 말은 자기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은 흩어진 자기 조각들을 다시 모아내고 싶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상담자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내 이야기를 비추는 다른 시선을 건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조각들은 연결되고, 조금씩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7. 상담실은 바로 그 연결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남의 눈에 비친 얼굴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숨죽이던 목소리가 드디어 말을 걸어오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