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1. 상담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있습니다.
“상담자는 공감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이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면, 정작 상담자에게는 버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듯 요구되지만, 실제 상담실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2. 공감이 어렵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감 강박’입니다.
내담자의 고통 앞에서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은 상담자를 경직시킵니다.
“내가 지금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걸까?”
“내담자가 공감받는다고 느낄까?”
이 질문에 사로잡히는 순간, 상담자는 오히려 자기 내면의 불안에 빠져 상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지 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감을 잘하려는 그 마음이 오히려 공감을 막아버리는 역설이 생겨납니다.
3. 두 번째 이유는 공감을 기술로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훈련 과정에서는 “공감하라”는 지침이 강조됩니다. 훈련 속에서 배운 공감은 말은 정확하지만, 정작 그 순간의 살아 있는 마음은 비켜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정말 힘드셨겠어요”라는 정형화된 말을 꺼내지만, 이 말이 살아 있는 공감인지, 단순한 훈련의 결과물인지 불분명해집니다.
그 순간 공감은 살아 있는 만남이 아니라,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4. 또 다른 이유는 상담자의 한계와 피로입니다.
누군가의 슬픔과 분노를 오랜 시간 곁에서 듣다 보면 상담자 역시 소진됩니다.
자기 돌봄 없이 계속 내담자의 감정에만 머무른다면, 공감은 더 이상 관계의 힘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래서 상담자의 공감은 ‘무한한 수용’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머무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5. 공감이 어려운 또 다른 순간은 내담자의 방식 때문입니다.
어떤 내담자는 감정을 차갑게 비껴 말하고, 어떤 내담자는 상담자를 시험하듯 고통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상담자는 “이 사람의 진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과 씨름합니다.
즉, 공감은 단순히 ‘말해준 감정’을 받아 적는 일이 아니라, 말 사이에 숨어 있는 진짜 마음을 찾아내려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6. 더 깊이 들어가면, 공감이 어렵다는 것은 사실 상담자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담자의 상처가 내 안의 상처와 닿을 때, 상담자는 순간적으로 방어하고 싶어 집니다.
내담자의 이야기가 나의 아픈 경험을 건드리면, 오히려 귀를 닫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 상담자는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상담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낍니다.
7. 또 하나, 공감의 어려움은 ‘경계 상실’에서도 옵니다.
내담자의 감정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마치 내가 그 사람인 듯 동일시하는 순간, 상담자는 자기 자리를 잃습니다.
공감이란 상대와 함께 느끼는 것이지만, 동시에 ‘나와 너는 다르다’는 거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거리가 무너지면 공감은 함께하는 힘이 아니라, 함께 무너지는 경험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진짜 공감은 상대의 고통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내는 일입니다.
8. 결국 상담자가 배워야 하는 것은 늘 완벽하게 공감하는 법이 아닙니다.
공감이 막히는 순간 스스로를 비난하기보다, “왜 지금 내가 이 사람의 이야기에 닿지 못할까?”를 성찰하는 힘.
공감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리를 지키려는 약속일지 모릅니다.
공감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상담자는 비로소 진짜 공감을 배우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