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기에 위대한

영화 '더 길티' 함께 읽기

by 그리다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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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

칼 포퍼(Karl Popper), 과학철학자


1.

정상적인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긍정적인 자아이미지를 갖고 살아갑니다. ‘난 못나기만 한 사람이야’라는 자괴감에만 온종일 빠져있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무의식은 손쉽게 ‘내 생각이 맞아’라는 자기확신을 낳고는 합니다. 재밌게도 일단 판단해서 행동을 하고 나면, 우리의 뇌는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는 그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만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확증편향’이라 말하죠. 그렇게 되면 인식은 ‘나는 틀리지 않아’라는 아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 ‘내가 틀렸다’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태도는 위대한 인간의 존엄입니다. 영화 <더 길티>(원제: Den skyldige)의 주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반전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이라면 가급적 영화를 보고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2.

영화는 헤드셋을 끼고 있는 아스게르의 귀를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영화의 주된 감각이 청각에 있음을 암시하죠.

영화는 긴급구조센터에서 일하는 경찰 ‘아스게르’의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무언가 실수를 해서 재판을 받는 동안 직접 범인을 잡는 현장직에서 구조센터로 좌천된 아스게르는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신고전화를 받아 내용을 파악해 다른 팀으로 연결하는 ‘지루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들어오는 신고마저도 강도를 당했다면서 알고 보니 매춘부에게 뜯겼다거나, 마약쟁이가 숨이 가쁘다며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시시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스게르는 하루라도 빨리 복직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러다 한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 이벤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 ‘말해줘야 돼?’라며 술에 취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합니다. 전화를 끊으려던 차에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아스게르는 몇 가지 유도신문을 통해 그녀가 납치되었음을 알아냅니다. 그러고는 인근 경찰서에 연락해 경찰차를 보내달라고 전달하죠. 그녀를 정확히 구해내기 위해서는 차량번호 같은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지만, ‘흰색 밴에 감금되어 이동 중이다’라는 정보를 끝으로 전화가 끊겨버리고 맙니다.


주민등록 정보를 통해 이벤의 집에 전화를 해본 아스게르. 아직 어리기만 한 이벤의 딸 마틸데와의 통화를 통해, 이혼한 아버지인 미카엘의 차가 흰색 밴이었으며, 방금 전 미카엘이 이벤과 싸우고는 칼을 든 채로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음을 알아냅니다. 아스게르는 ‘아빠가 엄마를 죽이면 어떡하냐’며 울음을 터뜨리는 마틸데에게 ‘경찰로서 엄마를 꼭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하죠. 그러고는 마틸데를 달래, 미카엘이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 안방에 들어가 젖먹이 동생 올리베르와 함께 있으라고 합니다.


3.

범죄는 벌어지고 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어 목이 탑니다.

마틸데로부터 알아낸 미카엘의 핸드폰 번호를 조회해보니 그에겐 폭력전과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은 더해만 가는데, 아스게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알아낸 정보를 돌리고는 기다리는 것밖에 없지요.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그는 따로 독방에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미카엘에게 직접 전화해 ‘이벤과 있는 것을 안다, 교도소에 다시 가고 싶냐’며 압박합니다. 당연히 통화는 바로 끊기죠. 그러고는 동료에게 전화를 하는데, 그 동료는 내일의 재판까지 자신을 위해 증언해줄 증인이죠. 그는 ‘내가 다른 진술을 하면 어떻게 되지?’라면서 초조한 기색을 내비칩니다. 아스게르는 ‘내일이면 다 끝난다’며 그를 달래고는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영장도 없이 그의 관할도 아닌 지역에 있는’ 미카엘의 집에 무단침입해달라는 거죠. 친구는 영문은 모르면서도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한편 이벤의 집에 경찰들이 도착합니다. 경찰들이 집을 수색해본 결과, 마틸데의 손과 셔츠에는 피가 묻어있고, 안방에는 올리베르가 ‘배가 갈라진 채로’ 죽어있습니다. 심지어 경찰을 따라 안방에 들어온 마틸데마저 그 끔찍한 광경을 봐버리죠. 분노에 찬 아스게르는 다시 미카엘에게 전화해, ‘이벤도 죽일 거냐,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이마에 총알이 박힐 것이다’라며 압박합니다. 전화는 다시 끊기죠.


다시 이벤에게서 전화가 오자, 아스게르는 이벤에게 손에 뭐든 무기가 될만한 것을 쥐고 있다가 미카엘이 차량의 뒷문을 여는 순간 머리를 내려치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죽을 것 같다’, ‘아이들을 보고 싶다’, ‘난 못하겠다’며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이는 이벤. 아스게르는 그녀에게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는 한편 일상적인 대화도 함께 하며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이벤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드디어 멈춰서는 차량. 아스게르는 다시 불안함이 도지는 그녀에게 ‘머리를 내려쳐도 좋다. 그가 자초한 일이다.’라면서 독려합니다. 이때, 이벤은 뜬금없이 ‘이제 올리베르는 괜찮다.’고 말하죠. 아스게르가 무슨 말인지 되묻자, ‘아이가 뱀을 삼켜서 너무 아파했기 때문에, 내가 꺼내줬다.’고 말합니다. 올리베르를 죽인 것은 이벤이었던 거죠. 이때 밴의 문이 열리고, 이벤은 그가 시킨대로 미카엘의 머리를 내려치고는, 전화가 다시 두절됩니다.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을 알게 된 아스게르는 좌절합니다.


4.

상상도 못한 반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아스게르에게, 미카엘의 집에 들어간 동료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그 집에는 수백 통의 우편물이 쌓여있었는데, 변호사와 정신병원으로부터 온 것들이 많았습니다. 둘은 이혼 후 양육권 분쟁 중이었는데 미카엘은 전과기록 때문에 양육권을 빼앗긴 것이죠. 한편 이벤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였습니다. 이벤이 통화 중에 계속 ‘갇혀있기 싫다’고 말한 것도 이 트라우마였죠. 뒤늦게 전말을 알게 된 아스게르가 미카엘에게 ‘왜 경찰에 이벤을 맡기지 않았냐’고 따지자 ‘의사, 변호사 등 누구도 제대로 도와주질 않았다’며 세상에 대한 원망을 내비칩니다. 그래서 올리베르가 죽은 문제도 최대한 이벤에게 문제가 되지 않도록 혼자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죠.

미카엘이 자신을 비난하지만, 아스게르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초점은 다시, 미카엘의 머리를 내려치고는 어디론가 도망간 이벤에게 맞춰집니다. 극도로 불안상태이기에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이벤이 구조센터로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그녀는 ‘제가 올리베르를 죽인 거죠?’라며 묻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정확히 몰랐던 거죠.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미카엘과 마틸데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투신하려 합니다. 아스게르는 어떻게든 그녀의 자살을 막으려 하죠. ‘미카엘은 당신을 도우려 하고 있다. 내가 틀렸다. 내 잘못이었다.’고 말하며 과거를 돌아보죠. 그러고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자신의 죄를 모두 고백하는 아스게르.

바로 지금 진행 중인 재판은, 아스게르가 ‘큰 죄를 저지른 19살 소년을 쏴서 죽였는데, 이를 정당방위로 꾸미기 위해 동료에게 위증을 부탁한 상황’이었거든요. 아스게르는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당신은 아니었다. 당신에겐 당신을 기다리는 남편과 딸이 있다. 그들에게 돌아가라.’며 필사적으로 설득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이벤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다시 종료됩니다. 아스게르는 그녀가 투신한 줄 알고 좌절하지만, 이내 현장에 도착한 경찰로부터 그녀가 안전함을 확인받습니다. 자신의 죄를 모두 알게 된 구조센터의 동료들은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하죠. 아스게르가 자리를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자신의 죄를 모두 알게 된 동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아스게르가 사무실을 나서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5.

<더 길티>의 형식적인 특징은 1인극이라는 점입니다. 센터동료들의 얼굴 정도는 나오지만 전혀 핵심이 아니며, 주요 인물들은 모두 통화 상의 목소리로만 드러납니다. 영화 전면에 나타나는 인물은 오직 아스게르 한 명 뿐입니다. 이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부각하는데 매우 적합하게 기능합니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자신이 정의라는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아스게르는 ‘자업자득이다’, ‘경찰은 착한 사람이야’, ‘그건 별거 아닌 일이니 나중에 전화해라’와 같은 대사에서 ‘선(善)에 대한 자신감’과 동시에 독선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나는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용의자라고는 하나)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라는 것도 동료에게 당당히 요구하죠. 하지만 이렇게 넘치는 정의감에 비하여, 긴급구조센터의 교환요원인 자신의 권한은 너무나도 작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요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요청을 하다가 마찰을 겪는 경우도 잦습니다.


그런데 아스게르의 정의는 결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의 지시를 따르다 자칫하면 무고한 사람이 죽을 뻔했고, 죄를 지었다지만 정당한 재판을 받았어야 할 청년이 총을 맞고 죽었죠. 심지어 후자는 이벤의 경우처럼 모르고 그런 것도 아니고, 아스게르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 또한 그의 정의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근거합니다. 긴급구조센터의 특성상, 모든 정보는 소리로만 접수됩니다. 여기서 요원들은 청각이라는 ‘매우 한정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정확한 판단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겠죠. 만약 그가 직접 이벤과 미카엘을 만나 얘기를 했다면 이벤의 정신병이나, 이벤을 도우려는 미카엘의 의도를 좀 더 빨리 눈치 챘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아스게르는 (양육권 분쟁에서도 그랬듯이) 미카엘의 전과를 알게 되자 그를 범인으로 단정지었습니다. ‘나는 선, 너는 악’이라는 구도로 프레임이 단순화되니 현상도 그에 맞춰 왜곡되어 인식된 것이죠.


아스게르가 이벤을 설득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뭔가를 없애고 싶었어요. 어떤 나쁜 뭔가를요.”

“뱀이요?”

“예. 맞아요, 뱀이었어요.”

이벤도 올리베르의 배에서 뱀을 꺼내고 싶어 했죠. 구약성서에서부터 뱀은 악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따라서 뱀을 없애려는 시도는 ‘악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의 표현이죠. 이벤과 아스게르 모두의 상황에서 이러한 노력은 무고한 희생양만을 낳았습니다. 스스로를 선으로 규정하며 세계를 바꾸려는 시도가 때때로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는 거죠.


다행히도 영화 말미에 이르러 아스게르는 비로소 자신의 정의를 되돌아봅니다. 증언을 해주는 친구에게 ‘나 때문에 억지로 위증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데서나, 동료들도 다 들을 수 있음에도 죄를 자백하는데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중간 아스게르는 독방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사적인 연락을 통해 수사를 진행해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변과 단절된 채 자기만의 정의로 빠져드는 길이지요. 이는 블라인드를 내리는 행동으로 더 심화되는데, 블라인드를 내리고 첫 번째로 하는 행동이 미카엘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라는 게 인상 깊습니다. 이후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미카엘/이벤과의 통화가 모두 두절되었을 때, 그는 분노에 차서 독방의 스탠드를 부숴버립니다. 그러자 독방에는 전화대기 중임을 알리는 붉은 빚만 남아있지요. 이 붉은 조명 속에서 그는 위증을 부탁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러고는 독방 밖에서 이벤이 자신을 찾는다는 전화가 오자 ‘진정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밝은 조명의 사무실로 나갑니다. 최종적으로 자신의 죄를 모두 고백하고는 좁은 정의의 세계인 사무실을 벗어나지요.

독방에 들어가 블라인드를 치는 아스게르. 점차 세계와 단절된 채, 자신에게로만 빠져듭니다.
붉은 조명이 아스게르의 내적갈등을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내적갈등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온 아스게르. 조명도 밝게 변합니다.

<더 길티>는 장르적으로는 스릴러로 분류되는 영화지만, 저는 이 영화의 깊은 가치는 주인공의 내면이 성장해 가는데 있다는 점에서 성장드라마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죄인”이 자신의 정의가 왜곡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는, 부정하고자 했던 죄의식과 정면으로 맞서도록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 셈이지요. 아스게르의 인간적 존엄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 달성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틀리기에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 과정에서 1인극이라는 형식을 영리하게 이용한 점, 청각효과를 섬세하게 가다듬으로써 관객들의 몰입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만한 작품입니다.


이상으로, ‘반성(反省, 돌이켜 살피다)할 줄 모르는 채 확신으로 가득한 선함이 얼마나 위태로운 결과를 낳는지 깨우치는 영화’, <더 길티> 였습니다. 오늘도 들어줘서 고마워요.


※ 함께 읽어볼 것들

1.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미스터리 대상 등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처럼 작품 내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대단히 탁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그보다 ‘우리가 얼마나 인식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특별함이 있습니다.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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