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함께 읽기

by 그리다 세계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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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명의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장막이 처져있고, 장막 너머에는 화가가 앉아있죠. 여자는 화가에게 자신의 얼굴을 설명합니다. 머리 길이는 어느 정도인지, 눈은 무슨 색인지, 얼굴형은 어떤 모양인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죠. 몇 분간의 설명을 마친 뒤, 여자는 자리를 일어섭니다. 그 자리에 다른 여성이 앉습니다. 이 여성은 앉아있던 여성과 오늘 처음 만나 몇 분간 대화를 나눈 사람입니다. 그녀 역시 화가에게 자신이 만났던 여성을 묘사합니다. 화가는 그렇게 하나의 여인을 두고 두 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들은 어떻게 달랐을까요? 총 일곱 명의 여인이 그림 속에 그려졌는데, 모두 그림의 주인공이 스스로를 묘사한 그림이 덜 매력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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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위의 실험을 실시했던 영국의 미용용품 브랜드 도브에 따르면, 오직 4%의 여성만이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여성에게는 그녀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물음에는 90% 이상의 여성이 그렇다고 응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처럼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족하게 인식하는 일은 일반적입니다. 타인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 것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 같이 느껴지던 순간, 겪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려는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동일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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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인공 다자키 쓰쿠쿠는 철도역을 설계하는 30대 중반의 남성 엔지니어입니다. 그에게는 그를 아직도 쫓아다니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네 명의 친구들로부터 일방적인 절교를 당한 것이지요. 인연을 끊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다자키는 그들에게 어떤 것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게 모두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47페이지)”하고 생각하는게 고작이었죠.


인연은 끝났지만, 상처의 후폭풍은 그의 육체에 짙게 배었습니다. 거의 반년의 시간동안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죠. 몸무게가 7kg이나 줄어, 얼굴형과 체형 모두 변했습니다. 그는 줄곧 ‘왜 나는 버려져야만 했는지’를 곱씹어 생각합니다. 쓰쿠루는 아마도 자신만이 ‘색채가 없이’ 매력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의 이름에는 모두 색깔을 의미하는 글자가 들어가 있었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친구들은 각자 이름에 걸맞은 캐릭터를 갖췄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각각 아오(靑), 아카(赤), 시로(白), 구로(黑)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자신만 본명 그대로 불렸죠. 그는 자신이 이 그룹 내에서 자기자리를 찾지 못하는 불필요한 인간인 것은 아닐까 의심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언젠가 그 친밀한 공동체에서 탈락하거나 방출되어 혼자 덩그러니 남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늘 마음 한구석에 담고 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있으면 어둡고 불길한 암초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런 불안이 자주 고개를 쳐들었다.”(23페이지)


결국 쓰쿠루는 과거의 늪을 딛고 일어섰지만 마음 한켠에는 두려움이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사라라는 여인은 “당신의 머리 속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자리를 잡고 있어”(128페이지)라는 지적을 하죠. 그녀는 이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위해서는 쓰쿠루가 직접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라의 도움으로 네 명의 친구들의 소재를 알게 된 쓰쿠루. 그렇게 그는 자신을 찾아 나서는 순례길에 오릅니다. 이 길 위에서 그는 자신이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과거와 마주칩니다.


4.


소설의 핵심은 쓰쿠루가 갖고 있는, ‘나는 색깔이 없는 인간이지 않을까’라는 내적갈등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자신의 모습, 즉 셀프이미지self-image를 형성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어요. 그래야지 타인과 분별되는 자신이 분명하게 인식될 수가 있거든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어색해하는 것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식의 이야기구조가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모나미룩.png 사람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옷을 입은 것을 보면 묘하게 웃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쓰쿠루에게는 대단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자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쓰쿠루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해서 책을 읽었던 것이겠지요. 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셀프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저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부터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먼저 첫 번째는 긍정사회의 분위기입니다. 나라는 인간의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에고ego와 셀프self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내가 세상에 보여주려는 의식적인 자아이며 후자는 스스로 느끼는 내면의 자아죠. 이 둘은 완전하게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 동일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밖에서는 쾌활한 인싸의 모습을 풍기는 사람이 집에서는 말없이 조용한 인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대학 OT나 신입사원 연수에서 평소보다 훨씬 호감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노력한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이는 우리사회가 개인에게 긍정성의 이미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그렇지만은 않죠. 모든 인간에게는 긍정성과 부정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것처럼, 완전히 긍정성으로만 도배되어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겨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이미지만 비춰놨는데 나는 나의 부족하고 악한 모습까지 알고 있어요. 에고와 셀프가 분열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나의 긍정적인 모습은 원래부터 그런 것이니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부정적인 면모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감정을 나타내는 영어단어 558개 중에 부정적인 단어가 62%를 차지할 만큼, 인간은 원래 부정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갖고 있거든요. 이 지점에서 에고와 셀프의 분열은 점차 커지기만 합니다.

Lonely Clown by PepstarsWorld on Deviantart.jpg 에고와 셀프의 분열이 커질수록, 우린 외로운 광대가 되어갑니다.


글의 맨 처음에서 소개드렸던 테스트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동일한 부위에 대해서 본인은 “제 어머니는 제 턱이 크다고 말했어요”라는 과거의 상처에 집중하지만 타인은 “날씬하고 이쁜 턱이었어요”라고 말하는가하면, 자신은 “제 얼굴은 통통해서 둥글어요”라고 말하는 동안 타인은 “푸른색의 눈이 아름다워서 인상 깊었어요”라며 아예 다른 부위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본인의 콤플렉스였던 눈밑 기미를 타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소설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점을 타인들이 발견해주기도 하죠.

아오가 입을 열었다. "넌 우리 그룹 안에서 늘 호감을 느끼게 하는 핸섬 보이 역할을 했지. 청결하고 말쑥하면서 몸가짐도 반듯하고 예의도 발랐어. 인사성 밝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아.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지각도 하지 않아. 이봐, 알아? 우리 어머니들이 모두 네 팬이었다는 거."

"어머니?" 쓰쿠루는 깜짝 놀랐다. 그들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단 한 조각도 기억이 없었다. (중략)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넌 있는 것만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로서 거기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었어. 넌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두 다리로 지면을 굳게 딛고 서서 우리 그룹에게 평온한 안정감 같은 걸 줬던 거야. 배의 닻처럼.”(201페이지)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를 남보다도 더욱 가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6.


두 번째는 미디어가 끊임없이 ‘비현실적인 긍정성’의 이미지를 송출하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긍정성만을 콜라주하여 보여줘도 문제인 마당에, 장면들 하나하나가 디지털 보정을 받아 환상으로 둔갑합니다. 여기서 도브가 만든 광고를 하나 소개드리고 싶은데요, ‘Evolution(진화)’라는 제목의 74초짜리 영상입니다. 영상은 평범한 외모의 모델이 화장품 모델에 걸맞는 모습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수많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들이 수십 분에 걸쳐 모델을 꾸민 뒤에, 그녀를 찍은 사진은 그래픽 전문가에 의하여 수정됩니다. 이목구비의 크기와 위치를 조정하고, 얼굴형은 물론 목의 길이와 굵기까지 편집되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모델의 ‘생얼’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영상 말미에 나오는 문구처럼 “우리의 미적 가치관이 왜곡되는 게 당연합니다.”(“No wonder our perception of beauty is dist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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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좌)와 애프터(우). 놀랍게도 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각의 왜곡은 그야말로 일상적입니다. 잡지, 공연, 방송을 비롯한 쇼비즈니스는 스타들을 그야말로 별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조명, 의상, 메이크업을 세팅하죠.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그들은 완벽한 우상으로 포장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찍은 사진들도 SNS에 올리기 전 필터를 교체하는 등의 간단한 보정이라도 거치기 마련이죠. 그렇게 일련의 과정을 거칠수록 이미지와 현실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마치 에고와 셀프가 분열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 분열의 작동방식을 알고 있다면 인식의 괴리가 줄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지의 환상에 도취된 채 비루한 현실을 저주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나의 매력은 이런 색깔이야”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강인한 인간이 몇이나 될까요.


7.


이렇듯 현대사회는 개인의 셀프이미지를 쥐고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자존은 위태롭기 그지없죠. 우리는 밖에서는 절대적인 긍정성을 연출하면서 사는 한편, TV 속의 인물과 광고를 보면서는 우리가 부족한 것들에 대해서 집중하도록 교육받습니다. 사회가 정한 긍정성의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그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한 자신의 조각들을 변형시키거나 도려내려고만 하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결국 ‘나는 색깔없이 보잘 것 없는 존재야’라는 그림자 속에 빠져들고 말죠.


과거를 정리하는 순례를 마치고 온 쓰쿠루가 처음 취한 행동은 사라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누군가를 놓친다 하더라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밖에 못하던 그에게 이는 크나큰 변화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과거를 살아왔는지를 명확히 하고나니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죠. 이것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당당하게 세상 앞에 자신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지금, 당신에게 여쭤봅니다.


“당신의 색깔은 무엇인가요?”


이상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들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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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이미지 : Photo by Sharon Pittaway on Unsplash

※ "외로운 광대" : Lonely Clown by PepstarsWorld on Deviantart

※ 참고자료 : "Real Beauty Sketches", "Evolution" by Dove


※ 함께 읽어볼 것들

1.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열심히 리뷰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읽어보는 것과 같을 수는 없겠죠. 개인적으로는 <노르웨이 숲>이나 <1Q84>보다는 더 몰입이 잘 되게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깊이가 대단한 철학적인 작품까지는 아니고, ‘한번쯤 읽어볼 만은 한’ 소설입니다.


2. 도서 <자존감 수업> 윤홍균 作 ★★★★☆

한창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이슈일 때 나온 책 중에서는 이론과 실전응용 양쪽을 아우른 보기 드문 책입니다. 일상용어를 다룰 경우 사람들의 해석이 제각각이라 논의도 이리저리 튀는 경우가 있는데, ‘자존감’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분석적으로 나눠서 접근하는 측면이 매우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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