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그 삶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하)

도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함께 읽기

by 그리다 세계여행


6.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집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는 그 방식이 허용하는 한계까지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의 예를 들어볼게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빛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소재로 사용됩니다.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이라는 뜻을 가진 ‘계몽’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enlightenment(빛을 밝히다)인 것처럼 말이죠. 문제는 빛은 더 강한 어둠을 낳는다는 겁니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 들어가보신 적이 있나요? 그곳에서 등불이나 후레쉬를 켠다면 우리는 그 빛이 닿는 영역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에 적응해버린 눈은 빛이 닿지 않는 곳의 물체는 전혀 볼 수가 없어요. 빛과 어둠이 명확하게 갈리는 겁니다. 그런데 빛을 없애버리는 순간, 당장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내 우리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게 됩니다. 그럼 빛이 있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물체들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합니다.

빛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빛이 아닌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기존의 빛을 버려야지만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이 시작됩니다. 철학자 바타이유(Georges Bataille)는 이를 ‘비지(非知)의 체험’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무지(無智)가 아니고 비지인 것은, 기존의 논리로는 ‘앎이 아니었던(非知)’ 영역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지식과 사고방식에 천착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7.

기존의 사고방식은 만들어진made 상태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도 아닐뿐더러, 스스로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도 아닙니다. 각 주체들이 ‘왜 그렇지?’라고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답할 때만이 진리는 치열하게 발전해나갑니다. 서양사에서 ‘계몽의 시대’가 ‘이성의 시대’로도 표현된다는 점에서, 이는 이성의 독단에 대해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따라서 깨닫고자 하는 이는 문자와 지식의 권위, 계몽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나 맞서 싸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해드릴게요.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스승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녀가 스승 앞에서 한 곡을 연주했는데, 스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 이상하지 않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당황했어요. 자신의 연주는 완벽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단 스승이 뭔가 이상하다고 하니 다시 연주를 하긴 하지만 찝찝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스승이 다시 묻습니다. “정말 틀린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선생님, 사실 저는 잘못 연주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연주에 틀린 부분은 없었어요. 스승은 제자를 떠본 것이었던 거죠. 스승은 진정한 예술가라면 “틀린 거 없는데요?”라며 자신의 예술에 대하여 당당한 태도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랐던 겁니다. 설령 자신을 지적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나의 스승’이라 할 지라도요.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서 권위에 맞서는 것, 주인된 자만이 할 수 있는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8.

이렇듯 깨달음을 위해서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주인됨’이 쉽게 찾을 수 없는 일들처럼 보입니다.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옅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답’에 대한 압력이 강한 나라지요. 대학은 어디를 나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은 어디를 가서 연봉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 공무원, 아이돌’인 나라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따라 하느라 자신의 말을 잃어버리고, 대열에서 이탈해버릴까봐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평균적 일상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앞 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다보면 이렇게 절벽인지도 모르고 떨어질지 몰라요. (레밍 신드롬)

카카오톡을 열어보면 채팅메뉴 오른쪽에는 뉴스피드가 있습니다. 뉴스피드를 조금만 내려보면 연예인 관련 기사를 금방 찾아볼 수 있는데요, 뉴스는 우리에게 누구의 공항패션이 어땠는지, 누가 방송에 나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참 친절하게도 알려줍니다. 이런 생활환경에 더해 십여 년도 넘게 교육되어버려 이미 우리의 몸에 답습되어버린 사고방식을 전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꼭 그 어려운 일을 해내야만합니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인간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니까요.


세계로부터 주어진 진리도, 목적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의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들어줘서 고마워요.


번외.

그래서 도대체 ‘검지를 드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깨달음은 그것이 ‘별거 아닌 행위’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러 온 사람들은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텐데, 스님은 오히려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립니다. 그것을 통해 아무도 할 수 없는 고난이도의 몸짓을 한다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삶을 이루는 요소라는 걸 인식할 때 일상적 깨달음이 가능함을 얘기하는 것이겠지요. 일상적 행동마저도 주체적인 판단 하에 실천한다면 그 행동 이전과 이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의 정신이지요. 하지만 주의하세요. 그러한 몸짓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결정한 ‘나의 몸짓’이어야 합니다. 남의 몸짓을 따라 하기만 하는 세인들에게는, 불쌍한 동자승이 당했듯이 구지 스님이 나타나 커다란 시련을 주실 테니까요.

PS. 동자승을 불쌍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동자승의 법명이 전해지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마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일 확률이 높습니다. 놀란 마음은 차분히 어루만져 주세요.


※ 함께 읽어볼 것들

1. 도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 김진석 作 ★★★★☆

철학의 가장 큰 핵심인 ‘질문을 던지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서 정말 잘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학술적 개념을 통하여 철학적 지식을 제공한다기보다, 철학적 사고방식이라는 큰 그림을 접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동어반복의 느낌이 있긴 하지만, 교양철학에 입문하는 데는 아주 훌륭한 책이에요.


2. 도서 <공부의 배신> 윌리엄 데레저위츠 作 ★★★☆

세계 최고의 대학들마저 ‘무력한 인재’들만을 길러내고 있는 제도권 교육의 현실을 비판한 책입니다. 제도권 교육이 젊음을 규격화하고, 사회가 검증된 안전함만을 추구해가는 과정을 지적함으로써 바람직한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시합니다. 시종일관 흥미진진하진 않고, 문체도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학습/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지점은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한 번 읽어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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