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얘기했습니다. ‘계급의 관행을 재생산하는 원칙’이 사전적 정의인데요,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체화된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라이프스타일의 개념과는 좀 다른데요, 아비투스는 계층을 구분짓는 표지로서의 역할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클래식 연주회를 좋아하더라도 개인의 취향이냐,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자라온 영향이냐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신분제가 철폐되고 돈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비투스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도 있으니 재산만으로는 ‘진짜 뼈대있는 상류계급’을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오랜기간 축적되어 형성된 아비투스야말로 그 사람의 신분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아비투스야말로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이며 하층민을 좌절시키는 기제입니다. 이러한 아비투스를 주제로 오늘 함께 얘기를 나눌 영화는 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입니다.
[영화의 핵심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계획이 없거나, 이미 보신 분들에 한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2.
영화는 옆집 와이파이를 훔쳐쓰는 반지하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이곳의 가장인 기택(송강호 분)을 포함한 네 가족은 변변한 직업이 없는 하층민이에요. 어느날 아들 기우(최우식 분)의 친구가 찾아옵니다. 친구는 교환학생을 가야하니 기우에게 자기가 하고 있던 부잣집 과외를 맡아달라고 합니다. 기우는 이를 받아들여 과외선생 노릇을 하고, 그럴듯한 연기로 학부모인 연교(조여정 분)와 과외학생 다혜(정지소 분)의 환심을 삽니다. 이후우연을 가장하며 기택의 가족 모두가 운전기사, 가정부, 미술교사 등의 명목으로 위장취업을 하죠.
어느날 집주인 가족이 아들 다송(정현준 분)의 생일을 축하하려 캠핑을 떠나자 기택의 가족은 빈집을 자기집처럼 지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기택 가족의 모함으로 쫓겨났던 전 가정부인 문광(이정은 분)이 불청객으로 찾아오고, 문광이 숨겨져있던 저택의 지하벙커에 자신의 남편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 밝혀집니다. 이때 우연한 계기로 기택 가족의 사기극이 문광에게 밝혀지죠. 난투극 끝에 기태 가족이 문광과 남편을 제압한 순간, 폭우로 인해 캠핑이 취소됐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연교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혼비백산한 기택의 가족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집안 곳곳에 숨어들고 문광 부부를 다시 벙커에 가둬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광이 심한 뇌진탕을 입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빠져나가기 전까지 우연히 집주인 동익(이선균 분)이 기택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듣게 되죠.
간신히 동익의 집을 나서 반지하 방으로 돌아간 기택의 가족. 폭우로 인해 집이 침수되었고, 기택의 가족은 인근의 대피소로 이동하여 난민처럼 하루를 보냅니다. 다음 날 날씨가 맑게 개었고, 연교는 어제 캠핑을 못했으니 대신 오늘 마당에서 지인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열 생각입니다. 이때 기택과 기정, 기우까지 돈을 줄테니 출근해달라 요청합니다. 모두가 모인 파티는 화려하게 진행됐어요. 그러던 중 기우가 아직 살아있는 문광 부부를 죽여 걱정거리를 없애려는 생각으로 벙커에 내려갔다가, 문광의 죽음으로 미쳐버린 남편 근세(박명훈 분)에게 머리를 가격당합니다. 벙커에서 탈출한 근세가 식칼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고, 마침 생일케이크를 전달하려 들고 있던 기정의 가슴에 칼을 꽂습니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파티장. 동익은 기절한 다송을 병원으로 옮기고자 기택에게 소리치지만 기택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기정을 보며 공황이 옵니다. 거듭 자동차 키를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동익 때문에 정신을 차려 열쇠를 던지지만, 열쇠는 난투극 끝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는 근세의 몸에 깔리게 됩니다. 근세를 들춰내어 열쇠를 찾으려던 동익은 근세에게서 나는 좋지 않은 냄새에 코를 막고, 이를 본 기택은 순간 폭발하여 동익을 살해합니다. 그러고는 집 밖으로 도망치죠.
한 달 후. 기우와 엄마 충수(장혜진 분)는 형사재판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기정은 사망, 기택은 행방불명됐습니다. 그러다 기우는 우연히 ‘자신은 벙커 안에 있다’는 기택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그 집을 매입해 기택을 만나겠다고 다짐하는 기우. 이어서 성공하여 기택과 마주하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이는 기우의 환상이었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반지하 방입니다. 바뀌지 않은 현실 속에서, 기택을 향해 전할 수도 없는 메시지를 읊는 기우의 나레이션과 함께 막이 내립니다.
3.
영화는 몇 가지 단어를 통하여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계획, 냄새, 선이 바로 그것이에요.
‘계획’이라는 단어는 기택과 기우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기우가 첫 과외수업을 가기 전, 연교의 의심을 피하고자 재학증명서를 위조하자 기택은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택이 평소 별 계획이 없이 살아왔다는 반증이죠. 한편 폭우로 침수된 집을 피해서 긴급대피소로 피한 상황, 기우는 기택에게 ‘(기택이 갖고 있다던) 좋은 계획이 뭐냐고 묻습니다. 뭔가 대단한게 있는 척하던 기택은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며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고 말하죠.
이를 보면 무대책인 기택과 최소한의 계획을 세우려는 기우는 대립되는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기택도 처음부터 지금 같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세상을 겪다보니 자신과 같은 하층민에게는 계획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걸 깨달은 것일지도 몰라요. 철저한 계획을 통해 동익의 집에 들어가 ‘기생’하기 시작한 기택 가족의 삶은 폭우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와르르 무너집니다. 계획을 아무리 세워봐야 계획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그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걸 몇번 겪는다면 기택처럼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말이 나올법하죠.
누군가의 재난은 누군가의 추억이자 운치입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것은 기택 가족의 삶을 망쳐놓은 중대변수는 동익 가족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단 점이에요. 사실 기택 가족도 동익 가족의 넓은 거실에 있을 때는 폭우가 ‘마당의 운치를 더하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환경을 떠나자 폭우가 더 이상 그림이 아닌 아닌 현실이 된 것입니다. 반면 연교에게 폭우는 미세먼지를 모두 씻어내고 맑은 날씨를 선물해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폭우 ‘덕분에’ 날씨가 좋으니 마당에서 파티를 하자는 연교를 보는 기택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게 별다른 계획도 없이 당일 결정된 파티에 모인 상류층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세련되기만 합니다. 그 모습을 본 기우가 다혜에게 '내가 이곳에 어울리느냐’고 묻는 것은 극심한 괴리감의 발로인 셈이죠.
영화의 시작에서는 계획이 있어보였던 기우도 폭우라는 변수를 만나자 변하기 시작합니다. 기우가 폭우를 맞으며 “(내게 수석을 준) 민혁이라면 어떤 계획을 생각했을까?”라고 말하자 동생 기정은 “민혁 오빠한테는 이런 일이 안 생기지!”라며 냉소적으로 일갈합니다. 계획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 기우는 이제 계획이 아닌 행운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침수된 집안에서 아무 가치도 없는 돌덩이인 수석을 챙겨와서 대피소에서 꼭 안고 있습니다. 심지어 왜 들고 왔냐는 물음에 ‘수석이 나에게 와서 붙었다’고 대답합니다. 침수된 집안에서 그 무거운 돌덩이가 자기에게 떠올랐다고 환상을 느낄 만큼, 기우의 합리적 사고회로는 마비가 되었습니다.
누구는 계획을 세워놔도 실패하고, 누구는 계획이 없어도 성공합니다. 결국 하층민의 현실 속에서 계획은 사치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기에 누운 채로 팔을 올려 눈을 가린 채, 무계획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기택의 모습은 ‘학습된 무기력’의 결과입니다.
4.
다음은 냄새입니다. 기택 가족은 옷과 헤어스타일, 말투까지 바꿔가며 상류층의 일상에 녹아들었지만, 가족들의 몸에서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후각은 가장 예민하지만 제일 쉽게 지치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좋은 냄새도 잠시 노출되고 나면 익숙해져서 잘 인지할 수가 없게 되지요. 철두철미한 준비로 이 집에 녹아든 그들이 ‘반지하 냄새’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수 년간의 생활로 인하여 몸에 배어버린 체취는 어떻게 꾸며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체취는 벗어날 수 없는 아비투스의 상징입니다.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인식하게 되죠. 그렇기에 동익이 운전기사인 기택에게서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 행주삶는 냄새,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냄새 그 이상의 의미가 되는 것이죠.
5.
냄새는 동익이 말하는 선과 이어집니다. 동익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선을 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해야할 일만 신경쓰고 그 이상의 월권이나 참견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택이 부부 사이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매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죠. 그나마 행동까지는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냄새였습니다. 자신도 모르는새 ‘선을 넘어’ 퍼지는 체취까지는 막을 수 없었고, 기택은 동익이 자신을 탐탁치 않게 생각함을 알게 됩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동익은 기택에게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음’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위치를 못 박는 것이죠. 이때 기택은 자신이 인간적인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 동익이 근세의 냄새를 맡고는 코를 움켜줬을 때, 기택의 쌓여왔던 감정이 폭발하여 동익을 살해하게 됩니다.
이 결정적으로 ‘선을 넘는’ 행위 뒤에 도주하는 기택은, 본인이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내가 돌아가야할 곳을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숨어들어간 벙커는 근세가 ‘계속 있다보면 태어난 곳 같다’고 말하던 곳이었죠. 잘못된 방법으로나마 선을 넘어 번듯하게 살아보려던 그들의 욕망은 한낮의 꿈처럼 좌절되었고, 그들에게는 현실이, 그것도 전보다도 더 비참해지기만 한 현실만이 남았습니다.
6.
아비투스는 단순한 문화적 취향일뿐 아니라 ‘계급의 관행을 “재생산”하는 원칙’입니다. 따라서 사고방식이나 문제해결방법까지 포함됩니다. 폭우의 경험으로 계획 대신 행운에 의존하게 된 기우의 변화는 불행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렇듯 무계획하게 사는 것은 오늘의 삶을 재생산하는 하층민의 아비투스를 체화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폭우는 기택 가족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았지만, 동익 가족에게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파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런 양극화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영화 속 비극을 낳았지요.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해봐야 아비투스에 갇혀 더 나은 계급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좌절이 만연하게 된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봉준호 감독이 고발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