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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Dec 02. 2019

세계최대의 슬럼가, 다라비를 향한 불편한 시선 (하)

누가 감히 다라비를 동정하는가

※ 본 후기의 모든 사진은 피촬영자의 동의 하에 촬영하였습니다.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greeda/35)


4.

 인터넷에서 다라비 투어를 찾아볼때 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다.

 당연히 현지인들이 올린 글은 아니다. 영어로 찾아본 후기들은 대개 유럽인들이 작성했다. 근거는 '동물원 관광'을 해서는 안된다는, 소위 윤리관광(ethical tourism)이다. 어떤 의미에서 얘기하는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여행기 작성을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가이드를 고용한 이유 중의 하나다. 가이드를 끼면 특정장소를 제외하고는 사진 찍는데 큰 제약이 없다.


 재밌게도 이런 제약을 관광객 스스로가 만들어냈다. 다라비를 방문해보면 알겠지만, 간혹 어디는 찍으면 안되는 이유가 그곳이 무슨 군사기밀이 있는데여서 그런게 아니다. 눈치껏 봤을때 '찍는걸 싫어하는거 같은 분위기'라서 그렇다. 가이드도 명확한 기준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여기는 싫어하는거 같으면 물어보고 안 찍는다. 결국 상호동의의 문제다.


5.

 그런데 윤리관광은 상호동의 없이 무조건 '찍으면 안돼'라고 선포한다. 현지인 대부분이 찍는걸 싫어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다른 인도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몇몇은 아예 같이 사진을 찍자거나, 찍어도 되냐는 말에 흔쾌히 승락한다. 간혹 안된다거나 사진을 찍을거면 얼마를 내라고 하면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물론 공개된 구역이 아니고 사람사는 집에 무작정 들어가서 사진을 찍겠다는건 안되지. 근데 이건 매너의 문제다. 슬럼가가 아니고 세계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잖아?


 그럼 도대체 누가, 왜 안된다고 말한걸까? 조금 극단적으로 난 이걸 '1세계의 편견'이라고 말한다. 소득이 낮고, 거리가 지저분하고, 집이 좁으니까 그들의 삶이 불행하고 비참하다(miserable)고 예상한거 아닌가? 누군가가 와서 측은한 눈빛으로 나의 비참한 삶을 찍고 가면 기분이 나쁠테니까 '사진을 찍지 말자'고 제안했다고 추측한다.




6.

 물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린게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재단한 선입견이다. 나도 선입견에 빠져있었다.

슬럼가라는 이름을 들었을때 난 불행을 상상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건 생기와 자부심이었다.


 아얀은 다라비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물건을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하지만, 다라비에선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마을 안에서 살 수 있다. 슬럼이라고 모두가 삶을 저주하고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게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노동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다라비 가죽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치열한 삶의 결과로 다라비의 총생산은 1년에 최대 10억 달러(1조 1천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워낙 많으니 1인당 소득은 크지 않지만 결코 무시할수 없는 경제규모다. 그 중에서도 가죽산업은 다라비에서 돋보이는 산업이다. 아시아 두번째 규모인 다라비 가죽시장에선 가죽제품들이 외부대비 70% 세일된 가격으로 유통된다. 제품에는 다라비의 로고가 또렷하게 드러나있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라비에서 만든 토기에 물을 보관하면 무기질이 용출되어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아얀의 얼굴에도 자부심이 선명하다.


다라비 가죽몰. 실제로 만져봤을때 촉감도 좋다. 다라비 로고가 선명하다.


7.

 함께 걷다보면 아얀은 30초에 한번씩 아는 사람을 만난다. 어른들은 물론 개구쟁이 애들까지 다양하다. 가는 공장이 한두개가 아닌데 그는 그 안의 기계가 뭐하는 기계인지 전부 다 안다. 신기해서 어떻게 다 아냐고 물어보니 어렸을 때부터 골목골목 뛰어다니며 보고 자랐더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단다. 다라비 사람들은 그렇게 다라비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다라비 사람들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 관대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슬럼가 출신의 고아가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하는 내용이다. 비록 빈민가의 이름이 명시되진 않았지만 일부 촬영이 다라비에서 진행되어 유명해졌다. 당연히 극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슬럼가는 매우 불행하게 묘사됐다. 이에 일부 인도인들은 영화가 인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조장한다며 항의했다. 내가 만난 뭄바이의 중산층 친구도 '인도가 이 정도는 아니야'라며 불만을 표했다. 그런데 정작 다라비 사람들은 쿨하다. '거짓말도 아닌데 뭘.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라는 태도다. 오히려 영화를 통해 다라비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좋아한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한 장면
누군가가 슬럼이라고 부르는 곳엔 누군가의 삶, 누군가의 예술이 숨쉬고 있다.


8.

 그래서 나는 슬럼가라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다른 여행지에선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곳에 와서는 엄숙해지는 것도 차별이다. TV에서 다문화가정은 인간극장 에 나오고 백인가정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것과 같다. 여행자로서 동의를 얻고 사진을 찍는 것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동정하는게 더 큰 무례아닐까?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뭐든지 못으로 보이는 법이다. 슬럼가라고 다른 잣대를 들이댈게 아니라 평소처럼 생각하면, 불행한 슬럼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다라비가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다라비를 만났다.




번외.

Q. 무조건 가이드랑 같이 가야되나요? 혼자 가면 안되요?

 다라비를 혼자 간다고 해서 사진을 못찍는다거나 현지인들에게 공격받을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이드는 고용하는게 좋다. 앞서 말했듯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고, 현지인들 입장에서도 생판 모르는 외국인이 와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친구의 친구가 왔다는게 더 마음이 편할테니 그렇다.


 가이드 고용은 경제적으로도 다라비에 도움이 된다.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다라비는 산업현장에 가깝다. 기념품점이 즐비한 여행자 거리와는 다르다. 외부인이 오는 것만으로 지역경제가 발전할 가능성은 적다. 관광객이 재활용 자원으로 만든 압착기, 세탁기를 살건 아니잖아? 돈을 쓰고 싶어도 쓸데가 없다. 외부인이 들어가서 먹을 식당도 없다. 기념품도 없다. 기껏해야 구멍가게에서 과자나 음료를 사는게 전부인데, 아무리 사봐야 2천원을 넘기기가 어렵다.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기엔 민망하다. 가이드에게 가이드비를 준다고 마을 사람들과 공평하게 나누진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소득은 다라비 내에서 소비된다.


 또 다른 이유는 사회의 부패다. 외부단체에 기부한다고 다라비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인도는 부패가 만연한 나라다. 아얀의 말로는 정부에 기부해도 10%도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한다. 다라비 내의 하천은 버려진지 오래다. 인도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투표율도 높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관심은 농촌을 향해 있다. 그동안 도시는 난개발됐다. 슬럼에 대한 관심이 있을리 없다. 예산은 부패한 공무원들이 챙겨간다.


오죽 부패가 심하면 정부가 발급한 여권을 배달하는 우체부가 뇌물을 요구한다.
뇌물이 없으면 여권도 행방불명이다.


 이런 정부를 믿느니 직접 와서 돈을 쓰라는게 아얀의 생각이다.


 나도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는데,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어 팁까지 남기고 왔다. 다라비를 갈거라면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시간이 멈춘 천국, 인도 고아"이에요.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에서 석양을 보며 쉬는 느낌은 어떨까요?

 12월 6일 월일 오전 7시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썸네일 : telegraph.co.uk

2. 길거리1 : commons.wikimedia.org

3. 뛰는 아이들 :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4. 길거리2 : gettyimage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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