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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진 찍지 마세요." "왜요?" "슬럼가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왜요?"
1.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진 찍지 말라는 소리를 간혹 듣는다. 출입국심사, 박물관, 종교장소 등 다양한 곳에서다. 가끔 이해가 안될때도 있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니 군말없이 수용했다. 그런데 사진찍지 말라는 소리를 제3자가 할때가 있다. 인도 뭄바이의 슬럼가에서 겪은 일이다.
2.
다라비(Dharavi)는 인도의 경제수도, 뭄바이의 한복판에 위치한 슬럼가다. 세계최대의 슬럼가로 불리는 다라비의 면적은 2.4제곱킬로미터다. 세계최대치고는 작은것 아니냐고? 다라비가 유명한건 인구 때문이다. 이 면적에 백만 명이 산다. 잠실종합운동장의 세배가 안되는 공간에 경기도 고양시만한 인구가 살고 있는 셈이다. 홍콩의 구룡성채가 철거된 후로는 단연 세계 1위의 인구밀도다. 뭄바이의 인구밀도가 세계 2위인데(1위는 방글라데시 다카) 다라비의 인구밀도는 뭄바이의 42배에 달한다.
이 압도적인 타이틀(?) 때문에 다라비를 방문하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이 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 법. 다라비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혼자 다니는걸 선호하지만 이번만큼은 가이드가 필요할것 같았다. 그래, 솔직히 무서웠다. 슬럼하면 막 마약거래할거 같고 총기난사할거 같고 그렇잖아.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면 고용창출도 되니 1석2조라는 마음으로 가이드와 약속을 잡았다.
편견인건 알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 만나면 무서울거 아냐...
뭄바이의 한복판답게 다라비는 접근성이 정말 좋다. 무려 마을입구에 전철이 연결된 초역세권이다. 전철 역에서 가이드 아얀을 만났다. 아얀의 설명을 들으며 마을로 들어간다.
투어 가이드 아얀. 스물일곱 살인데 벌써 6년차 프로 가이드다.
3.
다라비의 역사는 188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인도의 자원을 빨아먹는데 혈안이었다. 영국은 이를 위해 뭄바이를 중심항구로 키웠다. 도시가 급성장하며 쓰레기도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이 쓰레기가 모인 곳이 오늘날의 다라비다. 아무도 살지 않던 쓰레기장에 가진것 없는 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쓰레기들 중에 성한게 있으면 재활용해다 팔아 먹고 살았다. 그렇게 모이고 모여 어느덧 100만 명이 이곳에 살게 됐다.
쓰레기를 분류하기 위해 모아놓은 작업장
오늘날에도 재활용 산업은 다라비의 핵심이다. 다라비는 크게 세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상업지구, 주거지구, 도예지구다. 상업지구에선 재활용이 한창이다. 재활용에서 그치지 않고 재가공까지 해낸다. 기계장치, 플라스틱, 의류까지 없는게 없다. 압둘이 플라스틱을 색깔별로 분리하면 비제이가 운반하고 토머스가 프레스로 찍어낸다. 산업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오죽하면 중고가전샵이 있다. 부품이 고장나거나 부서진 가전제품을 주워다 고쳐서 판다. 새것처럼 감쪽같다. 아예 새것을 만들어서 팔기도 한다. 한 공방은 다라비에서 만든 재료로 캐리어를 조립한다. 이것도 중고냐고 물으니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자부심이 가득하다.
중고 가전샵. 비닐까지 씌워놓으니 이월상품 재고같이 감쪽같다,
다라비에서 나온 재료로 만드는 F/W 시즌 신상 캐리어!
빵공장도 있다. 공장이라기엔 화덕 하나 있는 조촐한 규모지만, 화덕은 24시간 내내 3교대로 돌아간다. 그래도 수요를 충족하기엔 모자라다. 빵굽는 냄새가 고소하다. 하나에 5루피(80원)다. 먹어보고 싶어서 하나 사겠다고 하니 그냥 먹으란다. 가이드 덕분이다. 과장 좀 보태면 가이드가 온동네 사람을 다 안다. 빵에는 재가 살짝 묻어있지만, 맛은 아무런 편견없이 우리가 먹는 딱 그 맛이다.
갓 구운 빵의 냄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조금 더 들어가면 주거구역이 나온다. 주거구역이라고 해서 완전히 구분되진 않는다
슬럼은 계획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빈 땅에 집을 짓고 가게를 만들며 형성된다. 당연히 모든 것이 어지럽게 섞여있다.
주거구역은 집이 상대적으로 많을 뿐이다. 평균적인 다라비의 집은 가로세로 3m의 크기다. 3평이 되지 않는 공간에 일곱명이 산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난민캠프마냥 가재도구 하나 없는 것도 아니다. 주방,부엌, 샤워실까지 있을건 다 있다. 수납공간은 머리위에 올려 공간을 활용했다. 단, 화장실은 공용화장실을 써야 한다.
사진에 보이는 공간에 조그만 현관, 부엌, 샤워룸을 더하면 다라비의 집이 된다.
다라비 투어는 그렇게 좁은 골목을 구석구석 들어가며 진행된다. 골목은 여느 인도처럼 아주 좁은데다가 건물이 2층씩 올라와있기 때문에 빛이 잘 들지 않는다. 길도 구불구불해 미로같다. 다라비에 혼자 가면 길을 잃을수 있으니 꼭 가이드와 함께 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들어와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골목을 나오니 하천이 보인다. 쓰레기가 수북해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하천을 따라 걷다보면 쓰레기가 가득한 공터가 보인다. 아이들이 연을 날리며 놀고 있다.
골목은 좁고 벽은 높으니 한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쓰레기가 쌓인 공터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다.
※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세계최대의 슬럼가, 다라비를 바라보는 시선 (하)"에요. 슬럼가니까 사진을 찍지 말라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12월 2일 월요일 오전 7시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