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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라비아 해 너머로 석양이 진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천국이다.
1.
나는 휴양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인데, 휴양지는 여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나이들면 개고생 해가면서 배우는 여행은 못할거고 휴양지에 자주 드나들텐데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있나? 그래서 동남아 여행을 다니면서도 휴양지가 있는 루트는 쏙 빼고 다녔다. 이쯤되면 피해다닌 정도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북인도에서 남인도로 넘어가는 사이에 인도에서 휴양지로 가장 유명한 고아(Goa)가 있다. 인도의 중부지방엔 썩 관심가는 여행지도 없고, 서부해안을 따라 철도가 연결되기 때문에 고아를 지난다. 한번도 휴양지에 가본 적이 없으니 경험삼아 들러보기로 했다. 일단 경험이 있어야 좋든 말든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
2.
고아는 인도에서 가장 작은 주다. 고아에선 해안선을 따라 아라비아 해와 맞닿은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동해안처럼 해변 옆에 또 다른해변이 이어진다. 게다가 고아는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터라 주민의 25%가 기독교도다. (1위 힌두교, 66%) 거의 모든 지역에서 힌두교가 절대강세를 보이는 인도에선 드문 일이다. 육식과 음주를 선호하지 않는 힌두교 지역과 다르게 고아에선 다양한 음식과 술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주세가 매우 낮아 타 지방대비 1/4~1/3 가격으로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래서 고아에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온 유럽인들은 물론 인도인들도 휴양을 온다.
고아에선 가장 먼저 해변을 정해야 한다. 어차피 별다른 정보도 없으니 가이드북에 소개된 팔로렘(Palorem) 해변에 머무르기로 했다. 마침 여행 중에 알게된 누나가 미리 팔로렘에 가있었고 분위기도 괜찮단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3.
뭄바이에서 떠난 기차가 고아에 진입하자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야쟈수 같은 열대지방 나무들이 보이고 곳곳에 호수가 보인다. 기차를 한번 환승해 팔로렘에 도착하니 온 거리가 '여기는 휴양지입니다'라고 외친다. 숙소도 마찬가지다. 일단 주인부터가 기분이 한껏 업 되어있다. 온갖 자유로운 복장과 헤어스타일의 여행객들이 늘어져있다. 히피천국이다. 앞에 글에서 리시케시를 히피천국이라고 말했는데, 고아와 리시케시는 살짝 느낌이 다르다. 리시케시가 히피들의 순례지라면 고아는 히피들의 에덴동산 혹은 극락세계다. 정말 아무 걱정도 안들것 같은 분위기다.
"여기는 휴양지입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숙소의 모습
밀린 빨래를 하고 잠깐 쉬었다. 저녁에는 누나와 만나 식사를 했다. 고아에선 해변을 따라 온갖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모래사장 위에 낮에는 파라솔과 선베드, 밤에는 촛불을 켠 테이블들이 즐비하다. 마음에 드는데 그냥 앉아서 맘편히 주문하면 된다. 그렇게 밤바다를 보면서 저녁을 먹고, 내 발까지 밀물이 들어올 때까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해변을 따라 레스토랑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4.
휴양지에 가면 바다 보는것도 잠깐이지, 하루종일 뭘 하나 싶었다. 정답을 알아냈다. 휴양지에선 쉬는게 일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선베드에 누워 바다만 봐도 시간은 잘 흘러간다.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배고프면 음식을 시키고, 목마르면 술과 음료를 시켜먹는다. 음식은 비싸봐야 5천원, 칵테일은 비싸봐야 2천원이다. 인도음식은 기본이고 서양권 관광객이 많다보니 미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음식까지 종류별로 다 있다. 해산물 가판에는 신선한 해산물이 천지다. 맘에 드는걸 고르면 원하는 방식대로 조리해서 테이블로 갖다준다. 가끔 심심해서 해변을 걷다보면 일광욕을 하는 소떼, 혼자서 해수욕하는 강아지,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까지 재밌는 구경이 많다. 땅이 워낙 평탄하니 모래사장이 넓게 형성돼있고 수심도 얕다. 쉬기엔 이만한 바다가 없다.
고아에서 먹은 음식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맛있더라.
가판대에는 각종 해산물들이 신선하게 준비돼있다.
"나도 생선 먹을줄 아는데..."
일광욕을 즐기는 소떼와 해수욕을 즐기는 강아지
고아에선 그렇게 4일을 보냈다. 바다를 보며 글쓰고 쉬고 밥먹고 술마시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지내보니 휴양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건지 알겠더라.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 근심도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될것 같은 분위기. 모든 걱정과 고통이 표백된 곳.
5.
그래서 나는 고아를 떠나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남들은 1~2주, 더 길게는 한달 이상씩 있는다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천국일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멈춘것 같은 그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전에는 막연하게 휴양지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내게는 휴양지의 따사로운 햇볕보다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더 좋고, 휴양지의 잔잔한 파도보다는 무역항의 화물선이 만들어내는 파도가 더 좋다. 나는 나와 다른 세상을 만나며 배우는 삶이 소중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벤저스'와 '기생충'이 다른 영화이듯, 여행도 그 방식에 따라 제각각이다. 당연한 거지만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다. 나의 취향을 확실히 만들어 가는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같다. 나는 그래서 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난다. 남들이 말하는 천국이 아닌 나의 천국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의 천국은 어디입니까?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내가 인도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에요. 인도를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라고 말하죠.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제 마음을 붙잡은건 무엇이었을까요?
12월 9일 월요일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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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출처 생략시 직접 촬영)
1. 숙소사진 : The Lost Hostel in Goa-Palorem Beach on Book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