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매의 여름밤 (2020)
‘아스라한 여름밤’이 생각난다. 여름의 습한냄새,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 빨랫줄에 빨래를 너는 장면, 모든 요소가 싱그럽고 그리움을 차오르게 한다. 2층 양옥집에 살아 본적 없지만, 그곳에서 내 사춘기 시절을 보낸 것만 같은 향수가 생긴다.
터를 잃은 가족이 트럭을 타고 쫓겨나듯 골목 아래로 떠밀려 내려온다. 이것은 갈 데 없는 남매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될 것인가. 예상도 잠시, 정착지는 생각보다 금세 정해진다. 남매는 이번 여름을 할아버지의 낡은 양옥집에서 온전히 보낼 요량이다. 사업 실패 후 재기에 힘쓰는 아버지가 거리를 쏘다니는 동안, 그럴듯한 이벤트도 없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지낼까?
노쇠한 할아버지가 간간히 띄우는 미소속에서 정서를 나누고, 늦은 밤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텔레비전과 음악소리, 무수하고 조용히 밀려드는 감각들이 알알이 영글어가는 여름속에 옥주와 동주 남매의 여름밤이 지나간다.
영화는 아름다운 노을이 주는 애틋한 분위기와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가령 옥주가 할아버지의 집을 팔아버리려는 아버지의 부도덕함에 분노하고 집을 뛰쳐나간 뒤, 자신이 아빠 몰래 훔쳐서 남자 친구에게 건넸던 신발이 부끄러워져 다시 뺏어들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조차 해질녘 골목길 노을이 아름답게 옥주를 감싼다. 그 시절은 진정 아름답고 무해했었나.
지나간 것을 애잔하게 포장하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다. 그리고 기억과 추억의 태도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결국 구체성이다.
주체가 설정되지 않은 공간은 추억이라는 보편타당한 감성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지만 장소는 구체적인 기억을 통해 성립한다. 그래서 양옥집에서의 기억이 추억으로 아로새겨진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속 깊게 연민하며, 사려깊은 인물이 아닐까?
영화 속 아버지와 고모는 모종의 일을 겪고 자연스럽게 양옥집으로 돌아온다. 어렸을 때의 추억과 ‘본가’라는 개념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왔을테지만, 사전에 집 주인인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장면은 볼 수 없다. 이런 인물들과 섬세하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할 때 아빠한테 “할아버지한테는 허락 받았어?” 라며 할아버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고모와 대비된다.
그리고 옥주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마음을 지녔다. 왁자지껄함 뒤에 찾아오는 헛헛한 마음이 있다. 할아버지의 생일파티를 통해 소위 말하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보여지지만, 파티가 끝난 뒤 새벽의 적막과 고요함이 찾아온다.
어른들은 술을 통해 하루의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새벽에 깨어있는 옥주는 아래층에서 음악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계단에 앉아 가만히 음악을 듣는다. 가족 중 유일하게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교류한다. 할아버지와의 시간과 추억이 차곡차곡 쌓아올려진다.
옥주의 사려 깊음이 없었다면, 영화는 자칫 세대간의 단절만 보여주지 않았을까?
“갓난아기일 때 할머니가 나를 안고 횡단보도를 막 뛰어갔어. 진짜 생생했거든.
어렸을 땐 그게 내 기억인 줄 알았어. 근데 생각해봐라? 포대기에 싸인 내가 보이는 거면 그건 기억이 아니라 꿈인 거잖아.”
영화 속 고모의 꿈
1. 영화는 한 장면 장면이 평상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자연스러움에 의문을 갖는 장면이 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동생, 아빠, 고모 그리고 옥주 순으로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등지고 밥을 먹는 장면을 정면에서 잡는다.
매우 이상한 숏이라고 의문을 가질 찰나, 할아버지의 영정을 배경으로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식구들을 잡은 롱숏이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연결은 꿈에서 상황과 인물을 관찰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장례식에서 집으로 돌아온 옥주네 가족은 이제 할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식사를 한다. 이때 할아버지의 빈 소파를 잡아주는 시선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제 사라진 주인을 그리는 2층 양옥집의 시선처럼 보인다. 포대에 안긴 자신을 보았다는 고모의 꿈처럼, 주인을 떠나보낸 집은 이제 그 빈자리를 응시한다.
2. 집의 꿈
밤새 오열하던 옥주의 모습은 다음날 아침, 잠을 자고 있는 옥주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한참 잠이 든 옥주를 바라보던 카메라는 이제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들을 연결시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 이층 계단에 비치는 햇살, 청명한 날씨의 빨랫줄, 토마토를 키우던 할아버지가 늘 앉아있던 마당의 의자까지 카메라는 집의 기억들을 찍는다.
이것은 옥주의 꿈인가. 아니면 집이 꾸는 꿈일까?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알 수 없다. 상실의 아픔과 그리움은 아픈 시간이지만, 영화 전반에 깔린 추억과 그리움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여름밤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따스히 안아준다.
평범한 느낌이 드는 ‘남매의 여름밤’ 이라는 제목은 의외로 복잡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여름밤’이라는 단어를 보면, ‘여름’이 주는 청량함 한 편으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의 감각도 있고, ‘밤’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어둡고 고요한 심상이 전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강한 일상성이 느껴지면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종의 환상성도 엿보인다.
‘여름’이 주는 청량함 한 편으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의 감각과 함께 ‘밤’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꿈의 심상이 끼어들기도 한다.
일상의 평범함은 매일 반복되는 개념이라 단순한 듯해도 쌓이면 추억이 된다. 이처럼 그에서 길어낼 수있는 감정은 여름과 밤이 아니라 ‘여름밤’인 것처럼 일상과 환상을 포개는 영화가 바로 남매의 여름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