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플(2021) - 상실의 시대
단기 기억상실증이 감기처럼 퍼지자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주인공 알리스(아리스 세르베탈리스)도 중증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는 이름도 집 주소도 알지 못한 채 버스 종점까지 갔다가 병원에 수용된다.
소지품도 없어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기억상실증 환자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그들을 찾는 가족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를 찾는 가족들은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의료진들의 위로와 달리 그를 찾아오는 가족은 없다. 알리스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병원에선 '새로운 자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들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새로운 자아' 프로그램은 병원이 설정한 범위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이 매일 숙제를 하는 것처럼 새로운 경험을 한 뒤 사진을 찍는 과정이다.
알리스는 성실하게 '자아 찾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일상생활을 한다. 그는 장을 보던 도중 사과가 기억을 되찾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알리스는 장바구니의 사과를 다시 되돌린다. 그의 행동은 기억이 돌아오길 원치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알리스의 일상은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병원에서 정해준 기준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다 보니, 내면은 비어있다.
이는 불완전한 체험의 연속이며 한편으로 우울을 유발한다. 이미 일상에 불안을 느끼는 그이기에 기억을 회복하면 불안이 더욱 두터워질까 봐 겁을 내는 것만 같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작품에는 스마트폰, 컴퓨터와 같은 디지털기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이 분위기는 알리스가 '새로운 자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며 도드라진다. 알리스는 녹음기에 녹음된 목소리에 따라 인생 경험을 쌓고 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기록한다. 또한 스크린의 4:3 비율은 오직 인물의 행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기억을 잃은 알리스의 행동은 블랙코미디의 형태로 쓴웃음을 유발한다. 자아 찾기 프로그램 중 미션을 성공하기 위해 알리스가 우주복을 입은 모습이나, 사고를 낸 뒤 운전경험이라며 사진 촬영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색하고 한편으로 우스꽝스럽다. 영화는 일상생활은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한다고 볼 수 있다.
제목인 애플(apple), 사과는 알리스가 기억하는 유일한 맛이다. 몸은 뇌와 함께 기억의 영역을 담당한다. 오감 역시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사과의 맛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알리스는 계속 사과를 먹는다. 이 행위는 과거의 장소를 찾아가 기억을 되찾으려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
기발한 콘셉트의 매력을 절제하고 따뜻한 온도로 작품을 마무리짓는다는 점에서 영화 <애플>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들보다 한결 부드럽고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 <애플>은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저력을 굳건히 확인시키는 작품인 동시에 인간의 불완전함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