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릭 Jul 24. 2022

도플갱어의 존재를 확인한다면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한 편의 시와 극을 보는 듯하다. 영화의 빛바랜 색감이 극 중 내용을 아름답게 부각한다.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는 도플갱어인 두 여성의 삶을 신비로우면서도 시적인 감각으로 재현한 영화다. 폴란드의 베로니카(이렌느 야곱)와 프랑스의 베로니끄(이렌느 야곱)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공통의 영역에 놓인 삶을 산다.


외모와 재능, 심지어는 건강상의 문제까지 공유하고 있는 이들 두 사람의 평행적인 삶을 추적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삶의 불가해한 질서를 보여준다.





둘은 딱 한번 서로를 스치는데, 이 스침을 통해 베로니카는 베로니크의 존재를 인식한다.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취미, 습관, 생김새, 재능까지 판에 박은 듯 닮았다. 그녀들은 서로의 존재 사실을 알지 못하며 단지 ‘상대이면서 동시에 자기인’ 존재를 이따금 느낄 뿐이다. 이는 베로니카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때 베로니크가 슬픔을 크게 느끼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화는 도플갱어의 묘한 연대를 보여주며 관객들은 이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이끌린다.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








베로니크는 후에 사진을 통해서야 또 다른 자신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를 도플갱어의 개념으로 해석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둘이 처음 만난 곳은 크라쿠프 광장이었는데, 그때 상대를 먼저 발견한 것은 폴란드의 베로니카였다.


그 때문에 베로니카는 얼마 못 가 죽음을 맞이하고 ‘또 다른 나’인 베로니크는 살아남는다. 베로니카의 존재조차 몰랐던 베로니끄는 불가사의한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지워지는 존재가 가져다주는 생생한 느낌, 혹은 사라짐으로써 존재의 강렬함이 강하게 인식된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베로니크가 절망감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 장면은 베로니크가 베로니카의 죽음을 감지했을 때가 아니라, 동화작가이자 인형 조종사인 알렉상드르가 <두 개의 삶>이라는 작품을 위해 만든 두 개의 인형과 마주할 때이다.


어쩌면 이 순간 베로니크는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는 신의 실체를 엿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인형극보다는 ‘인형을 조종’하는 그의 모습에 매혹되었지만, 이제는 그에게서 자신 역시도 신이 조종하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는 삶의 주변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와의 운명적인 동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느닷없이 지워지는 의식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실제로 베로니크는 베로니카가 죽고 나서야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요컨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개인의 의식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결국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매우 신성하고 영묘한 영화다. 지워지면서 동시에 생생 해지는 것이 있다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감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