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허황된 장래희망일지라도 반에서 한 명씩은 꼭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적어내는 친구가 있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고 하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현실적인 미래보다는 어린 아이 답게 내가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적어 내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런 거 치고는 고등학교 전까지 나의 장래희망에는 항상 디자이너가 들어갔다. 앞에 오는 단어는 바뀌었지만 보통 패션 아니면 가구가 뒤바뀌며 엎치락 뒷치락 했던 기억이 난다. 2학년 때는 진지하게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었고, 집과 가까운 예술고도 알아보고 그랬었는데 진지하게 보이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많이 든다고 했었나? 흐지부지 이야기가 끝맺음 되고는 했다.
미술과 거의 엇비슷하게 돈이 많이 드는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는 왜 허락해줬는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렇게 미술은 고이 접어두고 나는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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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딱 봐도 내가 못할 것 같은 것은 쳐다도 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이왕 빚까지 내면서 전공 했는데 관련된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최대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분야를 알아 봤고, 그렇게 대학원까지 연결이 됐었다.
뭐, 인생은 알 수 없다고 후회도 미련도 없이 다 털어버리고 편입을 하긴 했지만 초반까지만 해도 관련된 일을 아예 놓을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갑작스럽게 돈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생기면서 관련 직종으로 간다면 그저 그런 돈이나 받으면서 평생 살게 될거라는 확신에 노선을 확 틀어버린 것이 어쩌면 내가 여기까지 오게 한 시작점이 아닌가 싶다.
무난한 경영학과로 편입을 하면서 나름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4학년 때는 코로나가 터지면서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온라인의 장점으로 인한 혜택을 잘 받았다. (성적) 그리고 1학기가 종강하자마자 방학 때부터 2학기 말까지 진행하는 취업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빅데이터라는 분야가 계속 뜨기 시작했고, 지역이나 학교마다 관련 자격증, 특강 등을 열어줘서 참여했었는데, 후회는 하지 않더라도 그 잠깐 맛보기로 했던 코딩에 흥미를 느껴 퇴사하고 데이터 분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해줬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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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일년 동안 데이터에 완전히 학을 뗐는데, 나는 이과 계열에는 절대 눈길조차 주지 말아야겠다는 경험을 확실하게 했던 한 해였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친해지게 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나이도 다양하고, 고민도 다양하고, 하고 싶은 것도 다양하다는 걸 어쩌면 그때서야 조금씩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sns는 알고리즘으로 인해서 나의 맞춤 영상이 뜨기 때문에 궁금한 것을 하나하나 찾아보지 않는 이상 어쩌면 예전보다 더 좁은 정보를 접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만큼 생각도, 직업도, 취미도, 그것들을 발전시켜 살아가는 방식도 많다는 것을 외면했던 건지 잊고 살았던 건지 너무 뒤늦게 알아 버렸다.
우연히 강의 플랫폼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내가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오히려 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강의 종류로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배울 것이 많고, 취미로만 생각했던 것들로 즐겁게 돈을 벌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잠시 머리가 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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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강의를 하나씩 들어보고 중단하고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찾아서 또 들어보면서 갑작스럽게 돈에 집착하고 있던 스스로가 조금씩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퇴사하고 본가로 내려오면서 흐릿해지고 있던 것에 새로운 것에 눈이 뜨이자 변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학 졸업도 전에 취업을 하게 되어 자취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서울로 올라갔었다.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퇴사했지만 다른 곳에 바로 취업을 하면서 일년 동안 열심히 다니고 돈도 모았는데,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건강도 안 좋아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고, 부모님도 내려오라고 하셔서 일 년만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집이 엄청 가난한 건 아니지만 나를 포함하여 여러 이유로 빚도 많고, 뭐 이런 저런 상황으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부모님께 이런 걸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으니 어쩌면 새벽에 들려오는 부모님의 대화라던가, 어렸을 때부터 스치듯 보고 들어온 상황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조합하여 혼자 지레짐작 했던 것이었다.
본가에서 지내면서 엄마가 자기 전 술 한 잔 할 때 옆에서 같이 마시며 이야기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가끔 진지한 이야기가 끼어들 때면 돈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누다 보니 내 생각보다 우리 집은 전혀 어렵지 않고, 풍족한 집안처럼 마음 껏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그럴 생각도 없지만) 내가 부모님 걱정을 해야할 일은 전혀 없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깨닫고 나자 오히려 연봉이 빵빵한 직업을 무의식 중에 찾고 있었던 나를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철이 들 시기부터 들어온 말들이나, 엄마가 나에게 푸념하듯이 하던 말, 장녀로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부담감, 책임감이 나를 조금씩 밀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고, 집안 사정을 제대로 알게 되어서야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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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그 시기인 것 같다. 교복을 입기 전부터 하고 싶던 미술에, 예전처럼 천재들만 한다는 인식도 사라졌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 시작해서 언제 정착해? 같은 걱정이나 누군가의 걱정을 빙자한 빈정거림도 과감하게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 분야에 10년 넘게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존경스러웠고, 지금도 여전히 부럽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일이 보람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하는 일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해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지 못해 버티고 버티다 보니 그 세월이 지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도 알고, 사회가 얼마나 각박한지도 잘 알고, 내 한 몸 건사하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된 나이가 된 지금, 한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남들이 힘들고 괴로워서 포기할 때도 그저 묵묵히 버틴 사람들일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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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작하는 것에 겁먹지 않을 수 있었다. 뭘 하고 살든 굶어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있었다. 지금은 생각 뿐이던 것이 확신이 되었고, 나는 그저 묵묵히 하다보면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이 되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살면서 뭘 하든지, 결국 꾸준히 하며 버티면 뭐가 되어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열심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