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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May 04. 2022

본방 사수?!

방송 출연진이나 제작진이 ‘본방 사수’를 외치던 때가 있었다. 꼭 제 시간대에 봐달라고 시간을 안내하는 광고도 있었다. 프로그램에 있어 시청률은 인기의 지표이자 광고 수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00년 중반 그쯤부터 케이블 방송을 볼 수 있는 가정이 부쩍 늘었고 그러면서 굳이 재방송을 통해서 얼마든지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한 본방송의 시청률 내지 화제성 감소를 막기 위해서 방송사는 ‘본방 사수’를 강조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최근 내가 본 프로그램 중에서 본방을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곳은 없었다. ‘본방송’이라는 작은 표시로 본방송임을 알리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그마저도 몇몇 드라마에 그쳤다. 미디어의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OTT 업계의 성장으로 인하여 방송업계는 큰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방송업계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간주하였지만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임을 감지하였고 어느덧 방송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에 클립을 만들어서 올리는 프로그램도 많고, 드라마의 경우 아예 OTT 업체와 협력하여 제작하고 본방송이 끝난 이후 바로 VOD를 제공하는 일이 대다수이다. 심지어 OTT를 통해서만 독점적으로 나오는 프로그램마저 등장했다. 여전히 시청률은 중요한 지표지만 방송사도, 시청자도 더는 그 부분에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OTT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었다.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티빙. 국내에 진출한 웬만한 OTT 서비스는 적어도 한 번씩은 다 이용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OTT의 매력은 거부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방송 프로그램이 몇 시에 하는지도 모르고 무슨 프로그램이 나왔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예 하루 종일 OTT만 켜본 적도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분명 OTT에는 수많은 콘텐츠가 있는데 ‘왜 이리 볼 프로그램이 없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때로는 하루 종일 틀어 놓고 있으면서도 재미가 없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이상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OTT가 제공하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도리어 혼란을 낳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쉴 새 없는 정보 찾기, 다른 말로 하자면 웹 서핑을 통해서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감정에 쉬이 휩싸이는 현대인과 심리와 비슷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의 시간표를 알아두고 그 시간에만 티비를 보고 다른 일에 집중하자. 이런 규칙을 정하기로 하였다. 번거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드라마 여러 회차를 몰아 보면 후반부에 급속도로 집중력과 흥미가 감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주 제 시간에 찾아 보니 많아야 한 주에 서너 편 시청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높은 집중력과 효율적인 시간 활용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꼭 다시보기를 찾아 봐야 할 만큼 바쁜 상황이 아니기도 하다.


새로운 실험은 꽤나 괜찮은 결과를 낳고 있어서 이번 달은 과감하게 모든 OTT 구독을 해지하였다. OTT 없이 사는 삶은 어떨까 궁금했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마음대로 방송을 볼 수 있는 시대에 그러한 혜택을 포기하고 굳이 예스럽게 살고자 하다니 어떤 면에서는 미련하고 어떤 면에서는 무척 자기주도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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