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조용한 하루, 엄마라는 이름

과거의 엄마, 지금의 나

by 이숨

평일은 평일대로 숨 가쁘게 흘러가지만, 주말이 되면 또 다른 분주함이 시작된다. 온전히 세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인 만큼 집 안은 금세 아이들 장난치는 소리로 채워지고, 크고 작은 요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쉬어가는 날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역할이 시작되는 시간. 주말의 나는 쉼보다는 책임에 더 가까운 자리에서, 엄마로서의 시간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많은 직장인에게 주말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면, 직장을 다니는 엄마에게 주말은 또 다른 형태의 일터가 된다. 미뤄두었던 집안의 몫들을 하나씩 해내야 하고, 평일 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마음도 차분히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주말은 나에게 쉼을 허락하는 시간이기보다, 책임을 다시 꺼내 드는 시간에 더 가까웠다. 그 역할 속에서 나는 늘 무언가를 채우고,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주말을 보내왔다.그런 날들 속에서, 어느 주말에는 문득 ‘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도 평일의 피로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는지, 그날 아침은 유난히 늦잠을 즐겼다. 집 안은 평소보다 한층 고요했고, 서두를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느릿하게 늦은 아침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우며, 설거지를 천천히 마친 뒤에야 비로소 나는 나만의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쥐고 잠시 눈을 감으면, 아이들의 웃음과 작은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잔잔히 들려왔다. 그 소리에 마음 한켠이 느슨해지면서, 오래도록 잊고 있던 평온함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숨을 고르듯 집 안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누구는 색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누구는 블록을 쌓으며 집중했고, 또 누구는 작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속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분주함 속에 놓치고 지나쳤을 소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그날은 따뜻하게 내 마음을 감싸주었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주말의 바쁜 일상이, 이렇게 잠시 멈춰 서 있는 사이 따뜻하게 녹아드는 듯했다.

오랜만에, 아주 잠시였지만 나만의 주말 같은 휴식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거실로 스며든 햇살은 유난히 따스하게 내 마음까지 감싸주었고, 그 빛 속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아이들이 무심히 “엄마” 하고 부를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의 나처럼, 그 시절 엄마는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그런 생각이 고요히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내가 지금의 아이들만큼 어렸을 때, 엄마는 아빠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혼을 하셨다. 어린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여자 혼자 두 아이를 키워간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그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 알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나와 동생을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며, 그 마음은 오랫동안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그 미움 뒤에는, 엄마 역시 감당하기 버거웠던 시간들과 선택의 무게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보니, 그때의 엄마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몸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업무와 책임을 이어가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역할이 기다리는 하루하루 속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지켜낸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짐이었다. 월급이 들어와도 이미 정해진 곳으로 흘러가고,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보다 현실적인 한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소한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 속에서 나 자신을 다독이지만, 그 기준 앞에서 스스로 초라해지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차 한 잔을 천천히 비우며, 나는 다시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나의 엄마였던 사람, 지금 이 순간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나 자신,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무게와 의미까지. 나는 어떤 엄마로 남고 싶은가,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자리하고 싶을까 하는 질문이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예전의 나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아이를 키우고,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보니 그것이 단순한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책임과 고민, 그리고 선택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 무게를 조금씩 느끼며, 나는 이제야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조금씩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하지만 직접 아이를 키워보고, 엄마로 살아보며, 그마저도 혼자 세 아이를 책임지는 경험을 해보니, 이전의 단순한 생각은 너무도 가벼웠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책임의 연속이었고, 그 무게는 내 상상보다 훨씬 더 컸다. 아이들을 이 세상 속에서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마음 앞에서, 세상은 때때로 너무도 두렵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스치기도 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무거운 책임을 붙잡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의 삶 곁에 서려 한다.

이 작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혼자서 나 자신을 지켜야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다짐이 솟아오른다. 내게 온 이 세 아이에게만큼은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고. 힘이 들 때에도, 기쁠 때에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나에게는 그런 엄마의 자리가 없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을 다해 마음을 내어주는 엄마로 남고 싶다. 최고의 엄마가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흔들릴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고, 필요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는 일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그 시간을 견뎌낸 자신을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하루하루 선택한 삶 속에서 쌓인 작은 용기와 노력들은 이미,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결정이자 가장 잘한 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를 살아낸 나 자신과,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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