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버티게 한 마음
멍하게 아침을 보낸 날이 있었다.
그날은 출근 체크를 5분 늦게 해버린 날이기도 했다.
막내가 아파서였을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린,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결국 당일 반반차를 냈다.
업무가 유난히 많았고, 일손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날이었다.
과장님은 난색을 보이셨다.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지 않아야,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어린아이 다리에 난 종기를 크게 놔둘 수는 없었으니까.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은 계속 아파하는 막내에게 가 있었다.
늘 해오던 반복된 일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서툴게 느껴졌다.그러다 결국 담당자님께 한소리를 듣기도 했다.
변명할 여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트러진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손을 움직여
겨우겨우 맡은 일들을 제시간 안에 마무리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사무실을 나서던 길에
친정 숙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장 김치를 해두었으니 오늘 와서 챙겨가라는 말씀이었다.
그 한마디에,
분주하고 날카로웠던 오전과
짧았지만 숨 가빴던 오후의 긴장 사이가
눈 녹듯이 사르르 풀려내려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에 잠시 몸을 맡겼다.
아직 해야 할 일도, 이어질 하루도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막내를 픽업해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다행히 심하지 않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조여 있던 가슴이 그제야 풀렸다.
아무 일도 아닌 듯 말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말이 큰 위로였다.
병원을 나서 친정 숙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엌 한켠에 놓인 김장 김치를 보는 순간,
숙모님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들고 간 통마다 가득가득 김치를 담아주시던 손길에는
말보다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김치를 받아 들고 서 있는 동안,
아침부터 쌓여 있던 하루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오전에 버텼던 시간들이
누군가의 손길 하나로 조용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오늘 하루가 조금 힘들었다고,
하지만 숙모님의 김치 덕분에
이 하루를 따뜻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숙모님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셨지만,
그 웃음마저도 또 하나의 위로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김치를 나눠 먹고, 씻기고,
하루의 끝을 차분히 정리했다.
모든 불이 꺼지고 침대에 누운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은 고된 하루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위로로 끝났구나.
하루라는 것은 늘 그렇다.
어떤 날은 버티기만 해도 벅차고,
어떤 날은 그럭저럭 괜찮게 흘러간다.
중요한 건, 그 하루를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잘 살아냈다고, 잘 버텨주었다고.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