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사라지면?_ 프란시스코 고야

by 글쓰는 을녀

인류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며 문명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야말로 가장 큰 화두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가장 큰 차이는 이성의 유무입니다.


이성이란 생각하는 능력을 말하는데요. 이성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원리와 이치를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며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성 덕분에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이성은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도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인류가 이런 이성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많은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이 질문에 스페인의 궁중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고야의 그림 <마녀의 집회>를 먼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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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왼쪽에 있는 검은 그림자가 눈에 띕니다. 악마를 상징하는 숫산양인데요. 이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표정은 광기에 가득 차 있습니다. 정신은 몽롱하고 입은 헤벌리고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이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렇게 이성과 거리가 멀어질 때 사람들은 광기를 보이거나 미신을 찾거나 폭력적으로 돌변합니다.


고야가 살던 사회는 이성적이지 못 했습니다. 그가 살던 스페인은 봉건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일어난 혁명과 달리, 스페인에는 무능한 왕과 부패한 정치인만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횡포 또한 넘었습니다. 기독교를 포함한 정치인들은 정적이 되는 반대파 사람을 마녀로 몰아 몽땅 화형 시켰습니다. 이런 마녀사냥은 기존의 정치체제를 유지시켜 주었고 기독교의 권위도 세워주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거짓 마녀를 잡아 죽이는 스페인은 광기와 미신의 사회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랑스의 황제를 자처한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지배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왕으로 올리려고 했습니다. 무능한 스페인정부는 이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마그리드의 시민들은 조제프(나폴레옹의 형)의 즉위를 크게 반대합니다. 프랑스 군에 반기를 들며 격렬히 대응합니다. 반기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은 마그리드의 죄 없는 시민들을 학살합니다.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전쟁과 상관없듯 많은 목숨이 이유도 모르고 살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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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08년 5월 3일 >을 보면 프랑스인들이 마그리드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있습니다. 아주 밝고 환합니다. 그는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박해받는 예수처럼 빛납니다. 그의 빛남과 다르게 배경은 어둡습니다. 칠흑 같은 이 어둠 속에서 그가 살아나갈 확률은 없어 보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성당이 그 사실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성당은 구원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묘비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와 시민들은 프랑스군과 대립해 있습니다. 이 빛나는 사내는 인류애와 인간적인 어떤 것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군인들이 딱딱하고 기계적인 포즈로 총을 쏘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는 인간적인 것과 거리가 멉니다. 죽음, 살인, 감정의 배제처럼 냉정합니다. 폭력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 그림이 눈을 사로잡는 이유는 폭력에 저항하지 않는 민초들의 정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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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선과 악의 대립구조 즉 민간인과 공격적인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도는 후대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위의 그림 <한국에서의 전쟁>은 고야가 피카소에게 준 영향을 알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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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매우 사실적으로 고발한 그림 <전쟁의 참과>입니다. 그림 속에서 우리는 인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성을 잃은 광기 어린 시선이 있습니다. 신념도 명분도 이성도 없는 전쟁에서 폭력만이 미쳐 날뜁니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모든 불이 꺼지고 어둠이 짙게 내려오면서 고야의 건강도 점점 나빠집니다. 그는 원인불명의 이유로 귀머거리가 됩니다. 늙은 화가는 말년에 고립된 생활을 합니다.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을 구해서 은둔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이 집에서 그린 그림들은 절망적이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그림들을 <검은 그림연작>이라고 부릅니다. 고야가 은둔한 집은 귀머거리의 집으로 불립니다.

이 검은 그림 연작 중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노스>는 단연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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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로누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아버지입니다. 신들의 왕이 된 그는 자신의 자식 중 한 명이 그를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그 후 신은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식인 제우스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살해되었습니다.

자식을 산 채로 씹어 먹는 아비, 과연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거인의 표정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치 지옥에 가면 볼 수 있는 표정인데요. 살해당한 자식도 끔찍하겠지만 살해하여 먹는 아버지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이 그림은 그 끔찍한 순간을 재현합니다. 예언에 눈이 멀어 아들을 잡아먹는 광기 어린 눈과 붉은 피부 그리고 입을 쩌억 벌려서 아이를 먹는 행위까지 잔인하고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자신을 먹는 아비의 눈은 고통에 가득 차보입니다.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많은 전쟁과 많은 폭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희망은 없었으며 그 와중에 귀까지 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놓았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실망을 너무 많이 느꼈고 고통을 보았기에 이런 잔인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스페인과 고야를 통해서 인간이 이성의 끈 놓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급변하는 시기일수록 이성이 중요합니다. 광기에 휩싸이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잠든 시간에 폭력이란 이름의 광기가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