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튀면 안 돼!_피테르 브뤼헐

by 글쓰는 을녀

몇 년 전 잠시 이슈가 되었던 단어가 있습니다. 너무 밝은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병.

가면 우울증입니다. 처음 이 단어를 접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두가 괜찮아 보이지만 누구도 괜찮지 않으니까요. 이런 사회를 보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화가 피테르 브뤼헐입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화가는 농민 화가입니다. 평생동안 농민들의 삶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김홍도처럼 시대를 그림으로 옮겼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풍자와 해학을 가득 담은 이 화가의 그림은 유쾌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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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이자 유작인< 교수대 위의 까치 >입니다.

그냥 보면 농민들이 춤을 추며 산을 오르는 그림(왼쪽아래)입니다. 전혀 무서울 것이 없는 그림이죠. 하지만 까치의 의미를 알고 나면 이 그림은 완전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나라에서 까치는 길조를 의미하는 새입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합니다. 반면에 서양에서 까치는 말 많은 감시자, 도둑 등의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마녀사냥이 유행처럼 퍼진 시기였습니다. 입 하나 잘못 놀리면 언제든 화형으로 죽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우울한 티를 냈다가는 바로 마녀로 찍혀 불길 속의 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였을까요. 그는 아내에게 유언으로 이 그림을 제외한 모든 그림을 다 태워버리라고 했다 합니다. 혹시라도 남아있는 가족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피해를 볼까 봐 걱정해서 그런 유언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과열경쟁이 심화된 우리네 사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힘든 것 우울한 것 등은 짐이 될 뿐입니다. 빠르게 숨겨서 웃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이기에 현대인의 인상은 항상 긍정적이고 밝아야 합니다. 더욱이 SNS가 대중화되면서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감시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공식계정과 진짜 내 계정을 2개 만들어야 하는 모습에 씁쓸함은 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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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그림은<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 입니다.

신의 뜻을 거역하고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자만한 이카루스가 결국은 떨어져 추락하는 그림입니다. 추락하는 순간 큰 빛이 번쩍하고 그 옆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은 이카루스처럼 자만하지 않고 신의 뜻에 따라서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상을 해내는 농부의 근검함, 성실함 등을 교훈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그림은 다소 무섭습니다. 죽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은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알아채고 도와 줄 법한데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다들 자신의 일만 합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환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신고를 하고 그를 도와야 했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제가 신고를 하고 쭈뼛쭈뻣하시던 몇 분의 도움으로 그 분은 지하철에서 내려 응급실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하고 그가 역에서 내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이 사건을 겪으며 만약 내가 위급한 상황이 온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돕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그림은 개인화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관심과 개인화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그림 속의 농부 또한 누군가는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근면한 척, 성실한 척 일을 해야만 합니다. 조금이라도 동요하면 이카루스와 같은 오만한 무리로 찍혀서 자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길 것 입니다. 두려움을 성실함으로 숨겨야 했습니다.


그 시대의 그들처럼 지금의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강산이 바뀌는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에게 줄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나의 일로도 나는 충분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들이 sns와 언론에 유령처럼 떠도는 시대이기에 남을 돕는 일이 행동으로 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브뤼헐의 그림에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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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농민의 춤이라는 그림입니다. 화려하고 즐거워야 할 파티에 누구도 진심으로 웃는 이 없습니다. 파티의 인물들의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화려하고 다채롭지만 편하게 웃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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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바벨탑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이 하늘의 경계를 어기고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경고를 보낸 신은 결국 바벨탑을 없애버립니다. 인간은 바벨탑을 쌓아 신에게 도전한 대가로 각 지역마다 다른 언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하나로 단합시켜주던 힘이 사라졌습니다. 인간은 단합대신 분열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서로에 대해 무지해졌고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신은 선한 자인지 아님 악한 자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이 그림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목적도 없이 탑을 높게 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탑만 높이 쌓다가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더 높이 더 높이 만을 외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 어떤 목적도 없이 경쟁만이 남아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 슬픈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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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뤼헐의 그림 < 장님 우화 >입니다. 보이지도 않는데 목적 없이 앞으로만 가다가 넘어져 버릴 것 같아서 아슬아슬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요즘,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를 외치지만 저는 한 가지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일으켜 세우던 자기 계발서 대신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는 내용의 책들도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정신적인 질병을 인정하고 때로는 한동안 쉬는 것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루하루 벌어야 하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결심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인 듯합니다. 간혹 사람들은 절망을 노래하고 더 이상의 가망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뤼헐이 살았던 시대에도 어두운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봄이 왔습니다.우리도 현실을 넘어 따뜻한 대한민국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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