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힘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합니다. 각종 미디어와 sns에 여유로운 취미생활과 멋진 해외여행 그리고 유명인사의 화려한 일상이 별처럼 떠오릅니다. 그에 비해 당신은 아주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당신의 일상은 평범할 수 있습니다. 눈에 띄는 색채도 없고 대단한 역사적인 사건도 없을 것 입니다. 마치 달력 속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처럼 말입니다. 대충보면 그냥 별 거 없고 작게만 보이는 일상입니다. 이런 작은 평범함을 생각하면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가 생각납니다.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감동이 그림 속에 있습니다.
밀레의 대표작< 이삭 줍는 여인들> 입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유명해진 작품입니다.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는 여인들이 보입니다. 이 여인들 뒤로 꽤나 많은 양의 추수된 곡식들이 있는데요. 언뜻 보면 그냥 추수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별 특징 없어 보이는 그림입니다. 하지만 땅도 기름지고 하늘도 푸른 이 계절, 이삭을 줍는 여인들은 배불리 먹을 수 없습니다. 농민이 아닌 그녀들이 줍고 있는 이삭은 추수를 하다가 흘린 쭉쩡이입니다.통통한 곡물은 지주가 가져갑니다. 이 여인들에게는 이 쭉쩡이만 허락되어졌습니다. 그러니 마른 낱알을 얻기 위해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작은 행위마저 그림의 오른쪽 끝에 아주 작게 그려진 감시자들에 의해 철저히 통제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줍고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농촌의 생활은 가난하고 애처롭습니다. 어쩌면 이 여인들은 형편이 나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쭉쩡이마저 얻지 못한 이들도 있을테니까요.
밀레의 그림 <자화상>입니다. 화가 밀레는 측은한 농촌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날카롭지만 금방이라고 울 것 같은 눈을 한 사내 밀레는 노르망디의 소박한 시골 농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가난한 화가였으며 명성이 높아져 겨우 가난을 지웠습니다. 그러나 빈곤할 적에 얻은 결핵으로 61세에 사망합니다. 이런 슬픈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표현한 농촌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슬프고 담담하며 조용합니다.
밀레가 살던 시기의 사람들은 영웅 또는 신화 속 인물처럼 위대함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나오는 사람은 신화에 근거한 여신이나 영웅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밀레는 가난한 농부를 그림 속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즉 영웅과 가난한 농부의 모습을 같은 선상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 농부들은 단단하고 강해보입니다.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입니다. 씨를 뿌리는 단순한 모습이지만 당당합니다. 영웅만큼이나 위풍당당한 포즈로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작고 초라한 농부의 자리는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빛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렇게 고요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매력있어서 일까요? 태양의 화가 고흐는 밀레를 존경하면서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밀레가 그린 주제는 정말 평범합니다. 키질하는 모습이나 씨를 뿌리는 모습등 그냥 농사일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엄숙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일을 하는 그들의 태도와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행위를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즐거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고 묵묵히 일을 수행해 가는 모습에서 숭고함까지 느껴집니다.
제가 농촌의 농부였다면 불만이 많았을 겁니다. 왜 이렇게 가난한지 남을 탓하고 인생은 힘든 거라며 자책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밀레의 그림 속 농부들은 감사했습니다. 밀레의< 만종 >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부부가 삼종기도를 하는 순간을 그린 작품입니다. 또는 아이를 잃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그림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래쪽에 놓인 감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아이의 관이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상황이었든 이 그림은 슬프고 조용하지만 감동적입니다. 삼종기도를 드리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라면 참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힘든 삶, 불평도 불만도 회피도 하지 않는 그저 감사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세,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가여워하는 마음까지 슬픔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죽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그림이라면 너무 애처롭습니다 아이의 죽음 속에서 조차 과장도 절망도 없습니다. 아이가 죽었다면 울며 짖는 것이 부모일 텐데 이 그림 속의 부모는 슬픔을 내재화 한 듯 묵묵히 기도할 뿐입니다.
최악의 절망조차 절망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게 덤덤하게 그린 <만종>, 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안타까움과 동시에 어떤 엄숙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살아있는 삶과 그 삶에 대한 기도의 간절함, 그리고 흘리지 못한 눈물이 전해지는 그림입니다.
밀레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은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사회 속 힘겹게 하루를 사는 모습, 그럼에도 불평과 불만 대신 차분히 하루를 정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더 다은 내일을 위한 한 걸음을 당당하게 디디는 모습들은 밀레가 그린 위풍당당한 농부들의 그것과 같습니다.
비록 밀레의 만종처럼 힘든 시련이 오더라도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난리 치지 않고 시간의 힘으로 덤덤하게 견디어내는 또는 견디어냈을 당신의 모습에서 어떤 강함을 느끼면서도 안쓰러움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돈을 버는 행위든, 아이를 키우든, 취업을 준비하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당신의 평범한 안에는 우리를 떨리게 하는 깊은 감동이 있다는 점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