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내 마음은 아직 무대 위에 있었다. 공연이 끝나면 홀가분해질 것 같았지만, 막상 끝내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아 허무함이 더 컸다. 오랫동안 준비한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받는 '합격증'같은 결과물을 기대했던 것일까? 단체 대화방에 하나 둘 올라오는 칭찬 글 중 나에 대한 글이 있는지에 집착했다. 비중이 작은 배우들에게도 칭찬 한 마디씩 있었지만, 정작 주인공이었던 나에 대한 칭찬은 없었다. 실망을 넘어 서운했고, '내 존재감이 그토록 없었나?', '2회차 공연 때의 실수가 정말 컸던 걸까?' 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 동안 악몽도 이어졌다. 꿈에서 공연에 대한 리뷰를 보았는데, '백수만 빼면 완벽한 공연', '백수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보기 힘들었다.'라는 악플로 가득했다. 그렇게 공연에 대한 후유증은 나의 일상과 잠재의식을 잠식했다.
더는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기 위해 나는 뮤지컬단의 단체 대화방 알림을 끄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 이런 심정을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뮤지컬단 내부에서 준비하는 작은 연말 공연 제안도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했고, 동기 모임만 몇 차례 나갔을 뿐 공연 관련 활동은 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자 후유증은 서서히 사라졌고, 나는 평범한 직장인‧남편‧아빠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새해엔 무엇을 도전할까 고민하던 중, 동기 배우에게 문자가 왔다.
"글이내벗 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작년 4월에 선배님들이 올렸던 작품 있잖아요. 그 작품 올해 4월에도 공연한다는데, 이번엔 연극제 초청을 받아 안산에서 올린다고 하네요. 글이내벗 쌤도 같이 하시는 것 어때요?"
평소 가깝게 지냈던 동료 배우의 뮤지컬 공연 제안 문자였다. 순간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보다, 후유증으로 힘들었던 내 모습이 먼저 떠올라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거절할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올해 일이 바쁘다고 둘러대며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거절할 핑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간파한 듯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닦달이 아니라 대본을 툭 보내거나 단장님이 나를 언급했다는 소식을 가볍게 툭 전하고는 사라졌다. 그런 그의 말들이 묘하게 나를 흔들었다. 거절할 이유만 찾던 나는 어느 순간 ‘한 번 더 해볼까?’ 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작년에 했던 첫 공연과 달리 이번 공연은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매년 4월 안산에서 개최되는 <4월 연극제>에 작년부터 참여하고자 했지만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에 다시 도전한 끝에 초청받게 된 것이다.
초보 동기들과의 작은 공연이 아니라 선배님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 세월호 추모라는 의미, 객석을 지인들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채운다는 점이 나를 다시 무대 위로 잡아끌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을 관객으로 모시는 만큼 더욱 날카롭고 냉정한 평가를 듣게 될 것이고, 이것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또 이어지면 어쩌나 우려스러웠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도 들여야 하기에 손을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맡게 될 배역이 주인공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렇게 공연에 끌리는 이유를 하나씩 찾아나가는 나를 보면서 이 공연에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조금씩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다시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최종 결정 전에 아내와 상의했다. 작년 이후 다시는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았던 이유와 이번 공연이 유독 끌리는 이유를 털어놓았다. 준비 기간이 4개월이 아닌 2개월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진심 어린 응원으로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누구보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내에게 또 한 번 미안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2월 초, 매서운 겨울 오후 나는 첫 연습에 참여했다. 연습실로 향하는 길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연습실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함께 참여하는 선배님들 그리고 동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연습이 시작됐다. 첫날부터 노래 연습이었는데 단장님의 지적과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출 선생님도 없었는데 “다시요! 다시!”가 쏟아졌다. 순간 작년의 악몽 같은 연습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작년에 “다시요”의 공포에 시달렸었지. 이걸 또 겪겠다며 제 발로 들어오다니. 발목을 뚝 부러뜨려버렸어야 했는데.’
작년 여름의 기억이 겹쳐졌고, 또다시 험난한 여정을 견뎌야 한다는 현실이 밀려왔다. 그러나 한 번의 경험이 있기에 이번 공연만큼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조금 내려놓고 준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