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보다 어려웠던 커플 연기

by 글이내벗


첫 번째 공연을 준비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연습이 이어졌다. 연출 선생님의 “다시요!”는 이번에도 쉴 틈 없이 터져 나왔고, 보컬 선생님의 “노래도 대사입니다!”라는 가르침 역시 계속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 공연에는 의지할 수 있는 동기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지난 공연과 달리 주인공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마음은 훨씬 가벼웠다. 이번 공연에는 솔로곡도 없었고 내가 등장하는 장면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즐기자!’라는 초심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도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바로 커플 연기였다. 첫 번째 공연에서는 아파트에 혼자 사는 백수 역할이었기에 커플 연기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는 짧지만 ‘연인’ 관계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표현해야 했다.


생전 처음 하는 커플 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무리 시민창작뮤지컬이라 해도 지나치게 어색하게 연기하면 작품의 흐름에 방해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 연인처럼 자연스러우면 그것도 또 이상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친분도 거의 없던 선배님과 호흡을 맞춰야 했기에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상대 역할을 맡은 선배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다며 MBTI, 좋아하는 음식, 노래, 취미 등을 묻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호구조사인가?’ 싶어 당황스러웠고, '이렇게 한다고 커플 연기가 자연스러워질까?' 하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선배님의 용기와 열정이 참 대단했던 것 같다. 나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커플 연기는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대사는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손을 잡는다거나 팔짱을 끼는 장면에서는 나 스스로도 어색해 미칠 지경이었다. 상대 배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음에도 유독 스킨십 장면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연출 선생님이 연인이 등장하는 장면을 삭제할까 고민했을 정도로 우리의 연기는 끝내 어색했다. 내가 봐도 어색한데, 관객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본인의 대사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경계하던 선배님의 적극적인 어필 덕분에 결국 커플 장면은 살아남았다.


한숨 돌린 선배님은 내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글이내벗 쌤 때문에, 가뜩이나 얼마 없는 내 장면 더 줄어들 뻔했어. 아니, 다른 장면들에서는 엄청 열심히 연기하면서 왜 연인 장면에서만 그렇게 뻣뻣한 거야? 나랑 커플 연기하는 게 싫어?"


선배님의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내가 왜 그렇게 뻣뻣하게 굴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좀처럼 어색하게 굴었던 데에는 바로 심한 ‘낯가림’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동시에 객석에 앉아 있을 아내 앞에서 다른 여성과 자연스러운 커플 연기를 하는 것이 내심 미안하고 민망해 스스로 자제한 이유도 있다. 그래서 미리 아내에게 연인 연기가 있음을 고백하면서 너무 어색해서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커플 연기 이야기에 조금은 질투할 거라 예상했지만 아내의 반응은 의외였다.


“거 봐. 평소에 나한테 얼마나 무뚝뚝했으면 커플 연기가 어색하니? 상대 배우에게 미안하지 않게, 내가 드라마 몇 개 알려줄 테니까 그거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


세상에, 질투는커녕 내 어색함을 타박하며 참고하라고 드라마까지 추천해 줬다. 이보다 쿨한 아내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 뒤로는 나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내려놓고, 그녀와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추천받은 드라마도 보면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노력하니 선배님도 나의 연기를 받아주면서 우리는 점차 자연스러운 커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덕분에, 골머리를 썩이던 연인 장면은 무대 위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일 수 있었다.


그렇게, 절대 못할 것 같던 과제를 또 한 번 완수했다. '공연'이란 것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기에 서로 진심으로 돕는다면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을 또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거리의 나무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고 꽃들이 피어났다. 따뜻한 날씨와 함께 공연을 앞둔 내 마음 또한 한껏 들떠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공연은 금요일 하루에 2회 공연을 올렸지만, 이번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1회씩 진행됐다. 공연을 하루 앞둔 금요일, 나는 오후 반차를 내고 안산 공연장으로 리허설을 하러 갔다.


유독 날씨가 좋던 날이라 리허설 대신 벚꽃비를 맞으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어두컴컴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과 음향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한 번 공연을 해본 자의 여유일까. 리허설을 위해 실제 무대에 올랐을 때도 첫 공연 때처럼 압도되지는 않았다. 작년에는 긴장으로 전날과 당일 거의 먹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울 만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실제 공연 무대에서 벌어질 일들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천하태평하게 후식까지 먹고 있던 나를 이렇게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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