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첫 뮤지컬 공연은 작년 무더운 여름, 어느 금요일 저녁에 열렸다.
러닝타임은 약 60분, 오후 5시 1회차와 저녁 8시 2회차 공연으로 계획되었다.
공연을 하루 앞둔 목요일 오후, 나는 반차를 내고 무대 리허설에 참석했다.
실제 무대에서 진행하는 첫 리허설이었다.
막상 서게 될 무대를 마주하니 그 무게감에 압도되었다.
생전 처음 무대 조명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보고, 허리춤에 무선 마이크까지 차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공연을 목전에 앞둔 리허설을 하면서도 대사가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혼란스러웠지만 내일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기억해야 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리허설이 끝났고,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자지 않고 기다리던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내일 잘할 수 있을까? 너무 긴장돼.”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가 아는 글이내벗은 걱정만 많지, 결국엔 잘 해낼 사람이야. 그러니까 걱정은 조금 내려놓고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해봐.”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내일 공연이 잘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디데이. 난생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역사적인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배웅을 하는 아내와 아이의 응원을 등에 업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어제와 똑같은 무대였지만 오늘따라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 커 보였다.
‘오늘이면 다 끝난다. 후회 없이 해보자.’
각오를 다지며 무대 위에 서서 텅 빈 객석을 바라보았다.
이제 오후 5시 첫 공연 전까지 단 두 번의 리허설이 남았다.
‘연습도 실전처럼’ 하려 했지만, 우리는 초보 배우였다.
연출 선생님은 목이 상하면 안 되니 대사와 동작은 실전처럼 하되 노래는 살살 부르라고 했다.
그렇게 오전 리허설이 끝난 후 점심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긴장 탓인지 입맛도 없고 허기를 못 느껴 절반도 겨우 먹었다.
이마저도 소화가 안 될까 봐 집에서 챙겨 온 소화제까지 복용했다.
두 번째 리허설까지 마친 뒤,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분장까지 받았다.
소품을 제자리에 두고 마이크까지 차고 나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공연 40분 전,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하는 모습이 대기실 모니터에 비쳤다.
"어떡하지...?"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손바닥에 흥건한 땀이 떨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대기실도 조용히 하라는 주문에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긴장감은 커져갔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단장님의 인사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커튼 뒤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떨어본 적이 있을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눈에는 눈물까지 맺힐 정도였다.
첫 합창곡의 반주가 시작되자 배우들이 일제히 무대로 걸어 나갔다.
무대로 향하는 저마다의 발걸음에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나는 관객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어 2층 빈 객석에 시선을 머물게 했다.
'이어지는 나의 독무대와 솔로곡에서도 시선을 피해야 하나?'
고민 속에서 첫 대사를 내뱉는 순간, 핀 조명이 나를 향해 강하게 내리꽂았다.
앞이 뿌옇게 보이며 관객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덕에 오히려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겼다.
조명 덕분에 ‘눈에 뵈는 게 없으니’ 마음껏 연기하고 노래할 수 있었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 뛰고 있었으나 긴장감은 기분 좋은 떨림으로 바뀌었다.
나의 독무대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와 모니터로 동료들의 연기를 지켜봤다.
무더운 여름, 함께 땀 흘리며 연습했던 동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무대를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연습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또 한 번 울컥했다.
잠시 뒤 사고가 터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극 중에서 뮤지컬 작가 지망생인 백수(나)와 옆집 부부간에 소음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그 후 뮤지컬 배우가 꿈인 옆집 여인이 백수가 자신을 데뷔시켜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에게 명함을 건네주는 장면이 있었다.
연습하면서도 어렵다고 느껴본 적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갔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 옆집 여인은 명함을 건네는 걸 까맣게 잊고 그냥 무대 뒤로 나가 버렸다.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뿔싸! 사고다!’
머리가 하얘졌다.
원래의 대본대로라면 명함을 받아서 찢으며 이름이 촌스럽다고 대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명함을 받지 못했으니 대사도 할 수 없었다.
연습 때도 이 장면에서는 실수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여기서 당황한 티를 내면 공연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재빨리 애드리브를 떠올렸다.
“뮤지컬 배우는 아무나 하나? 외모도 노래도 뭐 하나 되는 게 없는데 무슨 배우를 하겠다고, 쯧쯧.”
나는 대본에도 없던 대사로 즉흥 연기를 선보이며 자연스럽게 퇴장했다.
무대 뒤로 빠져나오자 상대 배우가 달려와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괜찮아요. 저 자연스럽게 잘 빠져나왔죠?”
나도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건 수없이 연습했던 덕분이었으리라.
이후에도 자잘한 실수는 있었지만, 우리들만 알지 관객은 눈치채지 못한 실수들이었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첫 공연을 마쳤다.
대기실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며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다음 공연에서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더 큰 위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때엔 알지 못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