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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사과 Dec 08. 2022

제발 나무꾼이 되어주지 않을래?

육아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 (1)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육아휴직자의 강박이었지만 그땐 그것만이 삶의 원동력이자 목표였다. 기회비용을 절감하고 싶은 검은 욕망 같은 것. 아이를 재우려 함께 누웠던 시간에도 육아 블로그와 육아서를 뒤적이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한 블로그에서 영재를 키워낸 엄마가 강연을 한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쪽지를 보냈더니 마침 한 자리가 있다고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강연 장소도 집에서 가까운 곳. 그때부터 내 가슴은 두근두근, 나는 마치 이 강연을 들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처럼 홀린 듯 입금을 했다.



 

  강연에서 수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모든 것을 다 실천하기는 무리였다. 그중에 가장 만만해 보이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 중 하나는 독후 연극이었다. 강연자가 예시를 든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이었는데, 사슴의 다급한 목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 무미건조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실감 나게 놀아줘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곧바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침 여섯 살인  아이 유치원에서 동극 프로젝트가 1 동안 있던 때였다. 매달 동화책  권을 선정하여 아이들마다 역할을 정한 다음 매월 말이 되면 동극을 하던 때였으니 나도 아이도 가장 쉽게 해 볼  있는 놀이인  같았다. 달뜬 마음으로 아이와 둘이 동화  인물의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하다  뺨이 볼그레질 만큼 설렘으로 가득했다.


  굳이 다른 이야기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애처롭게 살려달라던 강연자(사슴)의 눈빛과 숨소리만으로도 나에겐 이미 선녀와 나무꾼은 꼭 따라 해 보아야 할 아이와의 놀이 소재였다. 해가 어스름한 저녁이나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읽어주던 책을 이제 막 하원한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급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물었다.

  “재림아, 엄마랑도 유치원에서 하는 것처럼 동극 해볼까? 엄마는 선녀와 나무꾼, 이 이야기 너무 재밌어서 재림이랑 동극 해보고 싶은데, 어때?”

  “.........”


  

  본래도 말수가 적은 편인 큰 아이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대답이 없었다.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건지, 하기가 싫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이걸 꼭 해보고 싶은 엄마는 아이에게 자꾸만 대답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고 싶은 역할 골라봐. 사슴 할래? 나무꾼 할래? 엄마가 사슴하고 재림이가 나무꾼 하는 건 어때?”

 

  아이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그제야 눈치챘다. 눈치가 퍽 느린 엄마였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가져보는 이 설레는 목표를 당장 내려놓을 순 없었다.

  “그러면 어떤 역할하고 싶어? 하나만 골라봐 봐.”

  그때부터 아이의 눈은 천장을 봤다가 옆에서 놀고 있는 동생을 봤다가. 길 잃은 양처럼 눈동자만 데굴데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연극을 꼭 해보려면 아무리 성미가 급한 엄마여도 참아야 했다. 자꾸만 재촉했다가는 아이가 안 한다고 드러누울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아이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꾹 참고 기다렸다.



엄마, 나는 날개옷 하고 싶어.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날개옷? 날개옷이라는 역할이 있었던가? 날개옷은 사물이지 않나? 아니 얘는 도대체 인물이 아닌 사물을 하겠다는 이유가 뭐지?’ 정말 짧은 순간 동안 오만가지가 모자랄 오억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걸 거절하면 난 지금 이 연극을 할 기회를 놓친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날개옷? 음... 그럼 엄마가 사슴도 하고 나무꾼도 할게. 너는 날개옷이니까 여기 바위 옆에 가만히 누워있는 거야. 날개옷처럼.”

  승낙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승낙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승낙이 이런 건가 싶었지만 이렇게라도 해 보자 싶었다. ‘역시 육아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미 나의 몸은 1인 2역을 해내고 있었다.


  그때 그 강연자처럼 숨을 헐떡이며 나무꾼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슴으로 시작했다가 그런 사슴이 가여워 나뭇짐에 숨겨주는 마음 착한 나무꾼이 되었고, 다시 나무꾼에게 선녀와 결혼하는 법을 알려주어 은혜를 갚는 똑똑한 사슴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날개옷을 숨겨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나무꾼이 되기까지 아이는 가만히 누워서 엄마의 원맨쇼를 관람하고 있었다.

  드디어 날개옷을 숨길 시간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잘 먹었던 아이는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진짜 무거웠다. 아이를, 아니 날개옷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동화책에 없는 대사를 읊었다.

  “아이고, 무거워라. 날개옷이 왜 이렇게 무거워~”

  아이가 깔깔대며 웃었다. 아이가 웃으니 엄마도 깔깔대며 웃다가 둘이 함께 한참을 까르륵까르륵 배꼽을 잡고 허리가 끊어질 듯 웃었다. 그렇게 웃음으로 마무리된 연극이 세상에 또 있을까.



     

  비록 선녀와 나무꾼 연극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아이와 나는 ‘날개옷’이라는 우리들만의 추억을 얻었다. 그리고 육아는 남을 흉내 내는 시간이 아닌 나와 나의 아이가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그때 아이에게 나무꾼이나 사슴을 강요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코끝이 시큰해온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인생 서랍장 육아 칸에 ‘날개옷’이라는 단어를 살포시 넣어 두었다. 아이가 남들처럼 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들 때면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게.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날개옷을 들어 올린 그때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단단한 엄마가 되리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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