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의 기억과 함께 깊어지는 음악들
컴퓨터 앞에서 주로 일하는 나는 이어폰이나 헤드셋으로 노동요를 자주 듣는다. 재택근무를 할 때면 카페처럼 배경음악을 종종 틀어둔다. 그렇게 회사계정 유튜브는 플레이리스트 추천으로 가득한데, 작년 가을쯤 알고리즘의 은혜로 알게 된 클래식 음악이 있다.
바로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 The Graceful Ghost Rag라는 곡이다.
유튜브채널 토마토클래식의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재즈 같으면서 클래식 같은 매력적인 곡이다. 처음 알게 된 영상은 아믈랭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했던 '우아한 유령'이다. 다른 악기 없이 오직 피아노만으로 연주되는데 무언가 신나면서도 한 편으로 슬픈 느낌도 있고, 잔잔하면서도 활기차서 재택근무 할 때 노동요로 많이 들었다. (해당 영상은 박수소리 없는 한 시간이라 오래 듣기에 더욱 좋다.)
이후에 알게 된 이 노래의 스토리는 이렇다.
피아니스트이자 현대 작곡가 1939년생 윌리엄 볼컴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며 1970년에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전에 춤추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프면서도 우아하고 때로는 발랄하고 경쾌하기까지 한 느낌을 담아냈다고 한다. Ghost는 귀신이 아니라 17세기의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우아한 유령'은 단순한 추모곡을 넘어, 아버지에게 하는 영원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리움과 존경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후 아믈랭의 우아한 유령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쁨의 눈물이 나는 듯하다. 춤추는 것처럼 깨발랄하게 놀던 모카의 모습들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건강한 고양이였던 시기에는 그 야말로 귀여운 악동 유령처럼 놀았다.
'우아한 유령'을 자주 들으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른 음악가의 버전도 들려준다. 그중 한국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우아한 유령도 최근 나와서 듣게 되었다.
신기하게 나도 댓글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손열음 버전의 우아한 유령을 들었을 때는, 모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컨디션이 아팠던 때가 많이 기억나고 느껴진다. 윌리엄은 악보 초반에 "Moderate Rag-tempo (Don't drag"라며 경쾌하게 연주하라고 적어두었는데,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어째서 이렇게 슬프도록 아름답게 바꾸었을까.
앞으로도 다양한 음악가의 다양한 우아한 유령 버전을 들어보고 싶다. 그때도 모카가 선물해 준 아름다운 기억과 느낌들이 되살아 날 것 같다. 발레리나였지만 고령에 치매로 기억을 읽은 서양의 할머니가, 음악을 듣고 정확하게 몸동작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감각 기억 중 지속 시간은 일반적으로 청각이 가장 길다고 하는데, 이 음악이 나와 모카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유지해 주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곡은 피아노로 직접 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나의 '우아한 유령'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