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교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어찌나 많은지 기독교인이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곧 교만이라고 인식될 정도다.
가령 이런 것이다.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잠언 16장 18절)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비천하게 만드신다. 교만한 자들이 사는 견고한 성을 허무신다. 먼지 바닥에 폭삭 주저앉게 하신다.” (이사야 26장 5절)
“여호와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잠언 3장 34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시편 18장 27절)
또한,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플롯도 그 이름을 붙인다면 ‘교만’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한 것도,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도 교만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한 것도 교만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C.S. 루이스는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큰 죄가 바로 교만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비단 기독교인이어서만이 아니라 만악의 근원이 교만인데, 그가 교만한 자의 태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흥미롭다.
예컨대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교만을 싫어한다.
가령 행사에서 거물급 인사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볼 때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교만한데, 그 이유는 그 인물보다 우월하고 남들을 발 아래에 두는 거물이 되고 싶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쓸데없이 내 일에 참견하거나 은인 행세를 할 때 얼마만큼 싫은 감정이 드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교만한 사람은 경쟁적이다.
교만한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참기 힘들어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얻었을 때도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더욱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교만한 사람은 권력 지향적이다.
남들 위에 올라서서 타인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혹은 남들 밑에서 일하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이 교만하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만은 신앙에도 스며들 수 있다.
일부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믿는 자’라며 믿지 않는 자를 향해 잰체하기도 하고
은근히 자신의 신앙이 남의 신앙보다 더 크다고 믿는데
루이스는 이러한 행태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허깨비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른 모든 사람보다 훨씬 낫게 여기며 인정해 준다고 늘상 생각한다”고 말한다.
루이스의 글을 읽는 내내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교만에 이끌린다.
인간인 이상, 그리고 인간으로 둘러싸인 사회에서 사는 이상
언제나 교만은 찾아온다.
그리고 교만은 수없이 많은 인간 세상의 악을 이끌어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만든다.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것이다.
교만은 어쩌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법관이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월한 인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