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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31. 2020

나자렛으로 돌아온 예수님을 나는 알아볼 수 있을까?

마가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자렛으로 돌아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는 장면이 펼쳐진다.      

예수님은 고향을 떠나신 후 이웃 동네와 도시에서 설교를 시작했기 때문에 고향에서 설교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자렛 사람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 사람의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는 권능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러나 이러한 말은 경탄이라기보다는 못마땅함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잘 아는 마리아의 아들이며, 목수이며,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의 형제이며, 예수님의 누이들이 그들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배척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책 ‘오늘처럼 하느님이 필요한 날은 없었다’에서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도대체 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경이로워하다가 불신하게 된 걸까요? 네, 그들은 그분의 평범한 출신과 실제 능력을 비교한 겁니다. 곧, 그분은 목수이자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사람인데, 율법 학자나 서기관보다 설교를 잘하고 심지어 기적까지 행한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못마땅해합니다. 다시 말해 나자렛 사람들은 하느님(여기서 교황이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표현한 것은 천주교만이 아니라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라고 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본질이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이 사람이 되어 말씀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그렇게 낮추어지시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C.S.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마치 인간이 자신이 키우는 물고기가 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식의 비유를 한다. 그 정도로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낮은 신분으로 오셨고, 신분이 낮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닦아준 게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는데, 이러한 행보들이 숱한 추문과 불신의 원인이 됐다.       


예수님에 대한 추문과 불신.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걸까. 

지금의 나는 만약 예수님이 오시면 알아볼 수 있을까? 

몇 번을 생각해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았다. 

항상 높은 곳만 우러러보고 있으니

나는 나사렛으로 돌아온 예수를 알아볼 리가 없다.      


예수님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늘 나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졌다. 

내가 편협한 마음으로 배척하는 그곳에 

하찮아 돌아보지도 않는 그곳에 

의외의 곳에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항상 낮은 곳에서 낮은 마음으로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의 사랑,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유일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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