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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19. 2021

캐릭터와 세상을 뒤집어라… 부캐와 메타버스

*제가 문화부 기자일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이 곧 출간됩니다. 어떤 콘텐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해, 재미를 만드는 핵심 원리를 밝히는 내용을 책에 담았습니다. 책의 일부를 출간 전 공개합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천연덕스럽게 아버지의 말투로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반대로 아버지가 어머니가 돼 있다면 어떨까요?      


요즘 TV를 켜면 우리는 이와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많은 연예인들이 새로운 캐릭터로, 일명 ‘부캐’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비-> 비룡

엄정화-> 만옥

이효리-> 린다G, 천옥

이상순-> 조지리

제시-> 은비

화사-> 마리아, 실비

황광희-> 수발놈

정재형-> 정봉원

김신영-> 김다비 

박나래-> 조지나

한혜진-> 사만다

화사-> 마리아

매드 클라운-> 마미손

송해-> 아리송해

신봉선-> 캡사이신

…     


그중 유재석은 근 몇 년간 가장 다양한 정체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그는 ‘닭터유’였다가, ‘유DJ뽕디스파뤼’였다가, ‘유귀농’이었다가, ‘유고스타’가 됐다가, ‘유두래곤’, ‘유라섹’, ‘유르페우스’, ‘유산슬’, ‘유샘’, ‘지미유’로 변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유재석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천연덕스럽게 색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이 됐습니다.       


부캐 열풍의 포문을 열고, 주도하고 있는 김태호 PD는 ‘부캐, 또 하나의 예능 트렌드가 되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어쩌면 본인도 몰랐던 유재석을 찾아라.” 그러니까 ‘부캐’는 시청자가 어떤 인물에 가진 생각을 바꾸는 전의(轉意)를 통해 시청자의 당혹과 집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캐릭터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세상이 통째로 뒤집히고 있습니다. ‘메타버스’(Metaverse 초월을 뜻하는 그리스어 Meta와 세상을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아직 그 개념이 완전히 정립되진 않았지만 쉽게 말해 ‘가상현실 세상’)입니다. 메타버스는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세상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가상공간 ‘오아시스’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메타버스에 접속한 사람들은 현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서 현실 세계를 대체하는 가상현실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0만 개 이상 팔린 인기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대표적인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섬을 꾸미고, 타인의 섬을 방문하며, 그 섬들에서 돈을 벌고 취미생활을 즐깁니다. 생일파티를 하거나 가상결혼식을 올리기도 합니다. 미국 대선 때 조 바이든의 선거캠프는 이 게임에서 선거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게임의 뚜렷한 목적은 없습니다. 그저 현실을 대체할 뿐.      


가장 인기 있는 메타버스가 있는 게임으로는 ‘포트나이트’가 꼽힙니다. 전 세계 3억5,000만 명이 이용하는 이 게임은 본래는 3인칭 슈팅 게임이지만, 메타버스로서의 기능도 합니다. 가령 그룹 방탄소년단이 이 게임에서 노래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화제가 됐습니다. 뮤직비디오가 시작한다는 공지가 뜨자 플레이어들은 게임의 지정된 공간으로 가서 뮤직비디오를 시청했습니다. 특정 아이템을 사면 캐릭터가 방탄소년단의 춤을 추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자신의 새 싱글앨범 ‘THE SCOTT’의 발매 기념 콘서트를 포트나이트 안에서 열었습니다. 스콧의 아바타가 총 여섯 곡을 부르는 동안 캐릭터들은 점프를 하고 춤도 추며 공연을 즐겼습니다. 이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모인 접속자 수는 무려 1,230만 명이었습니다.     


토종 메타버스도 있습니다. 네이버의 손자회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증강현실 아바타 앱 ‘제페토’입니다. 이 앱은 출시한 지 2년 만에 글로벌 가입자 수가 1억8,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룹 ‘블랙핑크’가 제페토에서 사인회를 열었는데 4,600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여기 참여했습니다.     


재미의 관점에서 볼 때 메타버스는 전의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유재석이 유산슬로 변했듯, 가상현실 세상에 들어서면 현실의 모든 것이 가상현실의 것으로 바뀝니다. 그 전의로 인해 메타버스에 들어간 사람은 계속해서 당혹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The Metaverse is coming.”(‘메타버스’가 오고 있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미래가 메타버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자는 메타버스가 가까운 미래에 SNS를 대체할 것이고, 나아가 현실 세상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상현실 세상에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잠도 자고, 노래도 부르고… 현실 세상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가상현실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전의가 당혹과 집중을 만들어 재미를 일으킬 것입니다. 바야흐로 전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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