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Mar 01. 2021

심미학자 윤광준의 예술을 보는 눈… ‘재미 찾기’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31)

아트 워커 윤광준은 책 『심미안 수업』에서 자신을 딜레탕트(이탈리아어 ‘즐기다’dilettare가 어원으로, 예술 애호가)라고 소개하며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눈’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즐기다’라는 단어는 ‘어떤 것이 재미있다’는 것이 전제된 단어이니 ‘예술에서 재미를 살피는 방법’ 정도가 이 책의 기획의도가 되겠습니다.


작가는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 한옥이나 일본의 정원, 클래식 음악, 건축과 같은 조금 오래된 콘텐츠에서 재미를 찾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심미는 예술을 그저 ‘본다’(見)는 개념을 넘어섭니다. 그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가치를 보는 게 심미라고 말합니다. 예컨대 윤광준은 대자연의 아름다움보다 인간의 손이 닿은 결과물이 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미술, 건축, 음악 등에는 자연과 달리 인간이 부여한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를 인터뷰할 당시에 윤광준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과 독일 바우하우스에 대한 책을 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천인교향곡(Symphony no. 8)에 빠져있다고 했습니다. 이 곡은 모르고 들으면 그저 소음일 뿐이지만, 말러가 이 교향곡을 작곡한 동기가 아내 알마 말러의 불륜(바우하우스를 세운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의 외도) 때문이며, 이 곡이 그가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러의 입장에서 들으면 새롭게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윤광준은 자신의 아내를 떠올렸습니다.


윤광준이 말하는 심미, 즉 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이렇게 감상자 스스로 작품에 대한 생각의 변화(전의)를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예술의 이면을 공부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술에는 두 번의 의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감상자는 그 두 번의 전의에 당혹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윤광준은 이를 “자연의 아름다움이 일방적인 수용이라면, 예술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개입된 적극적인 반응”이라며 “심미안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커가는 능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한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오래된 예술은 싫다면, 2019년 4월 개봉해 십여 일 만에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 영화는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전의 마블 영화들을 많이 알수록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배가 됩니다.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이 이전 영화들의 오마주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영화의 후반부에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의 딸이 먹고 싶어 한 치즈버거는 이전 시리즈와 연결됐을 뿐만 아니라 토니 스타크 역을 맡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인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독한 마약 중독을 극복한 그는 한 프로그램에서 “치즈버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 마약을 끊었다”라는 식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개봉한 후 유튜브에는 이러한 오마주들을 해석하는 수많은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많은 콘텐츠에서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를 찾는 노력을 통해 추가적인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맥락이 없는 아주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유행입니다. 특히 15초 영상을 내세우는 틱톡의 인기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경쟁할 정도로 십대들 사이에서 굉장합니다. 이런 짧은 영상들은 물론 재미는 있지만, 시청자들이 거기서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이는 결코 반길 일이 아닙니다. 이런 영상만 즐기다보면, 시청자들이 점점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우일 수 있지만, 맥락 없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보는 세상이 온다면 그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사색하거나 정보를 연결하는 능력이 과거보다 현저히 떨어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봄비 내리는 삼일절 아침입니다^^ 이 글은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이달 26일 정식 출간되며(어쩌면 출간일이 앞당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91384048&orderClick=LAG&Kc=#N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5345014&start=slayer

http://www.yes24.com/Product/Goods/97636659


작가의 이전글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 어떤 전의를 좋아하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