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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Feb 28. 2021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 어떤 전의를 좋아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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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기종목을 좋아하시나요? 어떤 식의 전의(轉意 생각이 바뀜, 의미가 바뀜)를 선호하는지에 따라 좋아하는 구기종목도 다를 수 있습니다.  


구기종목에서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생각의 변화가 발생합니다. 관객은 어떤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 ‘공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나 ‘공을 빼앗길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데요. 공을 유지하리라 생각했으나 빼앗겼을 때와 공을 빼앗길 것으로 생각했으나 유지했을 때가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배구는 손으로, 축구는 발로 공을 튕겨내며 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렇기에 공을 손으로 잡아 유지할 수 있는 농구나 야구보다 종잡을 수 없고 빠른 전의가 일어납니다. 특히 축구에서는 발에 부딪힌 공이 어디로 튈지 잘 가늠이 안 됩니다. 리오넬 메시 같은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선수조차 공을 완벽히 컨트롤하지는 못하며, 자주 실수하고 빼앗깁니다. 배구 경기에서는 손에서 튕겨 나가는 공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 공을 빼앗기거나(공을 받아내지 못하거나) 유지하는지(받아내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축구나 배구보다 느리지만 더 화려한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스포츠는 농구입니다. 농구선수는 공을 손으로 잡은 채로 꽤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공을 가슴과 팔로 오랫동안 안고 있는 것도 가능한데요. 이런 행위를 최대한 막기 위해 한 번의 공격에 24초의 제한시간을 둘 정도입니다. 빠른 전의를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축구의 경우 그 어떤 훌륭한 선수라도 공을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어 그런 룰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야구도 농구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빠른 전의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야구에서 ‘공 빼앗김’은 타자가 투수의 손에서 던져진 공을 쳤을 때 일어납니다. 반대로 ‘공 유지’는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전달했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에 비유하면,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행위는 일종의 패스입니다. 야구에서는 그래서 전의가 주어진 아웃카운트 세 개 내에서만 일어납니다.      


전의(轉意)도 취향을 탑니다. 축구를 즐기는 사람은 한 선수의 발끝에서 공이 튕겨 나갈 때마다 일어나는 종잡을 수 없는 전의를 좋아합니다.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공을 빼앗기리라는 예상을 깨고 기어코 골을 넣을 때 그 희열은 더욱 커집니다.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빠른 전의를 좋아합니다. 농구는 그에 비하면 전의가 일어나는 빈도나 속도가 느리지만 그 전의가 일어나는 방식이 아주 화려합니다. 가령 공을 가로챈 선수가 파죽지세로 코트를 가로질러 덩크슛을 꽂아 넣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혹은 누군가의 덩크슛을 블로킹하는 모습을요. 그보다 단순하고 느긋한 전의가 좋다면 야구를 선호할 것입니다.


‘전의는 보는 사람을 무조건 당혹하고 집중하게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어떤 생각 변화에 집중할 의사가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의 ‘관종 행위’가 분명 당혹감과 집중을 유발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러한 행위에 정신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스포츠가 다를 수 있고, 애초에 선수가 공을 유지하느냐 빼앗기느냐에 아무런 관심(생각)이 없는 사람은 구기종목 자체에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축구장 풍경을 떠올려봅시다. 관객은 일어서서 경기에 몰입합니다. 발끝에서 튕겨 나가는 공의 변화가 어찌나 종잡을 수 없는지, 그 변화를 확인하려면 그만큼 많은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야구경기장은 어떻습니까. 관객은 수다를 떨며 무언가를 먹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야구장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거나 비빔밥을 비벼 먹는 등의 풍경도 연출되지요. 전의가 상대적으로 천천히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타이밍도 정해져 있으니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스포츠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고르라면 야구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축구나 배구, 농구의 전의는 너무나 빨리 일어나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고, 옆 사람과 수다도 떨 수 있는 야구가 편합니다.     


전의가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일어나는 야구는 축구나 배구와 비교해 관객의 연령대가 높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종잡을 수 없는 전의가 정신적으로 피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신력과 체력이 남아도는 젊은 층이 많습니다. 극장에 가면 청소년은 액션영화를 선호하는 반면 중장년층은 잔잔한 영화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고자 하는 전의의 형태는 다릅니다.


한편, 우리나라 야구 관객은 2017년 기준 약 840만 명으로, 축구(약 140만명)와 농구(약 100만 명), 배구(55만 명)와 비교해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야구가 젊은 층과 노년층을 동시에 포용할 수 있는 느긋한 변화가 일어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니까요. 과거 3S 정책(스크린, 스포츠, 섹스에 의한 우민정책)으로 야구를 적극 장려해 우리에게 야구가 익숙하며, 이에 더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느긋한 전의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여유 있는 전의를 선호하는 모습은 미국과 비슷합니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 NFL)가 가장 인기가 있고, 그다음이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순인데요. 미식축구는 농구나 야구처럼 손을 자유자재로 써서 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구와 마찬가지로 공격팀과 수비팀이 정해져 있고, 야구에서 세 번의 아웃카운트가 주어지는 것처럼 공격팀에게 네 번의 공격 기회가 주어집니다. 미식축구는 네 번의 공격 기회 안에 10야드를 전진해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공격팀은 10야드를 전진할 시 다시 공격권을 얻을 수 있지요. 미식축구에서 전의는 야구보다는 빠르게 일어나지만, 농구나 축구, 배구와 비교하면 느립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왜 축구일까요? 축구의 인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앞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전의가 일어나는 스포츠를 축구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축구는 가장 불안정성이 큰 스포츠입니다. 불안정성은 특·전·격의 효과를 증폭합니다. 둘째, 축구는 가장 쉬운 스포츠입니다. 규칙을 설명하지 않아도 남녀노소 누구나 축구를 처음 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전의를 즐길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이는 다른 예능이 아닌 <런닝맨>이 유독 국경을 넘어 인기를 누리는 이유와 같습니다. 뛰어다니면서 등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내는 행위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내달 26일 정식 출간되며,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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