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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Mar 04. 2021

다음 주에도 드라마를 보게 하는 힘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33)

인기 있는 드라마들은 공통점이 존재할까요? 잘 나가는 드라마들은 제각기 그 스토리나 스토리의 전개방식(플롯) 자체가 특이(特異)하기 때문에 공통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잘 나가는 드라마들에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매회 결말부에 시청자의 추가 시청을 유도하는 강렬한 격변(激變)이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라는 장르는 다른 어떤 콘텐츠보다도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장치가 중요합니다. 한 회 한 회가 이어지지 않는 다른 콘텐츠들과 비교할 때 중간에 유입되는 시청자가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이전 회를 보지 않고 다음 회를 보면 재미가 반감됩니다. 드라마를 1회부터 본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주요 고객이기에 드라마 제작자는 매회 결말부에서 다음 회를 보고 싶게 만드는 강렬한 격변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청자의 당혹과 집중이 드라마가 끝나고도 이어져야 다음 회 시청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스카이캐슬>의 높은 시청률을 만든 일등 공신도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급변하는 결말부 격변(激變)에 있었습니다. <스카이캐슬>은 후반부까지 밋밋하게 흘러가더라도 마지막 몇 분을 남기고는 반드시 다음 회가 궁금하게 만드는 격변을 일으켰습니다. 그 격변의 크기는 일반적인 드라마들이 결말부에 배치하는 격변보다 훨씬 컸습니다. 또한, 그 격변은 시청자가 이전 회차나 해당 회차에서 얻은 상식으로는 대부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반적인 드라마의 결말부 사건의 이해도가 대략 50%라면 <스카이캐슬> 시청자의 결말부 사건 이해도는 0%에 수렴했습니다.     


예를 들어 1회에서는 후반부까지 다소 지루한,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지만, 마지막 30여 초를 남기고 한 어머니가 차가운 눈밭에서 엽총으로 자살합니다. 아들을 서울의대에 보내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 어머니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시청자는 이러한 격변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회는 1회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자살 이유를 풀어내는 데 집중했는데요. 역시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학부모가 2회 내내 굳게 믿고 의지했던 합격률 100% 입시 코디네이터에게 갑자기 찾아가 뺨을 때리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2회 내내 그 학부모가 뺨을 때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3회 마지막 장면 역시 충격적입니다. 태생이 귀부인인 것만 같던 한 학부모가 사실은 밑바닥 출신이었다는 충격적인 과거가 밝혀집니다. 이 역시 1, 2, 3회의 내용으로는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4회 결말부 역시 굉장히 갑작스럽습니다. 한동안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아서 거의 잊혀가던, 1회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아들이 입시 코디네이터를 살해할 기세로 걸어오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14회의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입주 과외생으로 부잣집에 들어온 한 아이가 파티 도중에 발코니에서 추락하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은 드라마의 어떤 장면들보다도 화제가 됐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생각되던 그 아이가 6회나 남기고 죽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 어떤 시청자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적어도 시청자가 이전 회차들을 통해 얻은 상식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시청자들은 아이를 떨어뜨린 진범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쏟아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카이캐슬>은 매회 결말부에서 늘 시청자의 이해를 거부하는 격변을 연출했습니다. 드라마의 후반부로 갈수록 당연히 시청자는 집중력을 잃기 마련인데요. 결말부에서 격변을 만들어냄으로써 시청자를 당혹하게 하고 다시 드라마에 집중하게 한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선사하고 드라마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시청자는 남아도는 집중력을 다음 회가 어떻게 전개될지 추측하고 기대하는 데 사용하게 됩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스카이캐슬>을 보기 위해 불금과 불토 저녁을 기다린 이유입니다.    


한편, <스카이캐슬>은 지금까지 방영된 드라마 중 사회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된 드라마입니다. 그동안 대학입시를 장난스럽거나 비현실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종종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없었습니다. 예컨대 그동안 비슷한 드라마들은 대학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부모의 인맥이나 재력 같은 환경적 요소보다는 노력이나 지능 등 개인적 요소로 그려왔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가 사라지다시피 한 오늘날 이는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또한 경제적인 불평등과 연결되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이나 학생부종합전형의 맹점 등 ‘문제 많은’ 입시제도를 비판해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고, 토론거리를 던져줬습니다. 정계 학계 언론계 할 것 없이 <스카이캐슬>을 말하며 우리나라의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한편, 어떤 콘텐츠가 시청자의 가치관과 닿아있으면 그 콘텐츠의 특·전·격이 일으키는 당혹감과 집중은 증폭됩니다. 그 콘텐츠가 시청자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3월 26일 정식 출간되며(어쩌면 출간일이 앞당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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